역대상 1 |
내용을 잘 아는 사이에는 이름만 나열해도 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기 때문이다. 역대기 저자는 이런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간단하게 돌아보는 것이다. 잘 알기에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이다. 역사를 간단하게 요약, 정돈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사람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이다. 본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민족과 신앙의 중심을 잡으려는 의도로 기록된 것이다. 그 중심이 바로 조상들이다(창 5:3-32, 10:2-29, 25:1-16의 요약). 사람이 역사다. 역사에서 사람이 빠지면 그 역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태정태세문단세... = 아담, 셋, 에노스, 게난... 아브라함... 2. 따분하게 보이는 족보도 뭔가 특징을 발견하면 읽기가 수월할 수 있다. 이 족보가 단순하게 조상으로부터 후손에 이르는 직선과 같은 나열이 아니다. 어떤 형태인지 도표 형식으로 그려보자.
3. 인류의 조상은 아담이다. 오늘 이 땅에 살아있는 사람들의 시조는 아담 대신에 누구라고 할 수 있을까? 중시조라고 할 수 있는 조상이 있을까? 노아와 아브라함: 본문의 기록형태를 보면 두 종류의 조상이 있었다고 하는 셈이다(4, 27).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노아가 정답일 것이다. 아브라함은 오늘날 믿는 모든 사람의 조상이다. 영적인 관점에서는 아브라함이 중시조다. 흥미롭게도 본문은 아담에게서 출발해서 달려가다가 노아와 아브라함에게서 잠시 멈추어 서서 이들의 후손이 번창하고 있음을 상세하게 말하고 있다. 4. 일반적으로 셈, 함, 야벳이라고 부른다. 아마 나이순일 것이다. 그런데 후손을 소개하는 본문(5-17)은 역순이다. 그러고 보니 아브라함의 후손(이스마엘, 그두라의 아들들, 이삭)이나 이삭의 후손(에서, 이스라엘=2장)을 소개할 때도 그렇다. 왜 역순으로 소개할까? 장자권을 이어받지 못한 곁가지를 간단하게 소개하고 지나가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한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백성만이 영원히 살아남는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창 4장의 화려한 가인의 족보는 아예 언급도 하지 않는다. 5. 장자권을 이어받지 못한 자들은 버려진 셈인가? 족보를 보면 크게 번성하고 있다. 함이나 야벳은 물론 이스마엘, 그두라의 6아들, 에서의 후손이 세속적인 복은 더 챙겼을 수도 있다. 영적인 복이 다른 계통을 따라 갔을 뿐이다. 세속의 복을 받은 이들이 영적인 복을 받은 셈, 이삭의 품을 떠나지 말아야 했다. 6. 야벳의 자손 중에 알만한 이름 있는가? 별로 없다: 메섹(다메섹?), 다시스, 깃딤 정도? 이들은 서방(유럽) 세계의 섬들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노아의 예언대로(창 9:27) 크게 번성하여 인도-유럽 민족의 조상이 되었지만(창 10:-5) 이스라엘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았기에 기록도 단순하다. 7. 함의 자손 중에 알만한 이름이 있는가? 제법 많다: 구스, 미스라임, 가나안, 니므롯, 블레셋, 여부스, 아모리, 기르가스, 히위, 신, 하맛: 함의 자손들은 아프리카와 그쪽 방향에 있는 아시아 여러 지방으로 옮겨간 자들이다(기준은 시날 평지다). 구스의 아들 니므롯은 아마 그 당시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기 시작한 자이었을 것이다. 이들의 이름이 익숙한 것은 이스라엘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애굽인들이 나온 미스라임과, 가나안 족속들이 나온 가나안은 둘 다 유대인의 이야기에서는 커다란 관심을 끄는 이름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조상들과 애굽 땅에서 나오기 위해 싸웠고,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한 싸움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스라임의 지파들(11, 12)과 가나안의 지파들(13-16)은 특별히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고대에는 크게 번성하였으나(애굽, 이디오피아) 점차 미약해졌다(창 9:25). 8. 야벳과 함의 자손을 소개하는 방식과 셈의 후손을 소개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가? 셈의 후손은 자손별로 소개하지 않는다. 야벳과 함은 수평으로 나누어 다시 수직으로 소개한다면 셈의 후손은 수직으로만 소개한다. 아마도 비교적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엘람(오늘날의 이란, 바사인), 앗수르(앗수르인), 아르박삿(갈대아인, 바벨론), 룻(리다아인의 조상), 아람(수리아인), 우스(욥의 조상?) 등의 이름은 별도로 소개하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다. 9. 아담에서 노아까지 10대, 셈에서 아브라함까지 10대의 이름은 낯설지 않아야 정상이다. 왜 그럴까?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 이름들이 낯설다면 성경에 익숙하지 않다는 뜻이다. 10. 결국 아브라함이 낳은 자식은 전부 몇 명인가? 8명: 문제는 아브라함이 아니라 사라였네?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면 그런 셈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약속하신 아들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다. 다른 아들들도 아브라함에게 재산을 나눠받았고 번성했지만 약속의 아들은 아니다. 진정한 복은 하나님의 약속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 복은 이삭과 야곱을 통해서 전해진다. 다른 아들들도 이 복에서 떠나지 말아야 한다. 11. 아브라함의 자손도 곁가지를 먼저 설명한다. 이스마엘은 아들이 몇 명인가? 굳이 아들만이라도 자세하게 설명하는 이유가 있을까? 12명, 하나님께서 미리 약속하신 것에 대한 성취이기 때문이다(창 17:20). 12. 그두라의 소생 중에서는 미디안의 후손만 자세하게 설명한다. 이스라엘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모세가 망명갔던 곳, 후에는 적대적인 관계가 된다(민 25:18, 삿 6:1). 13. 아브라함, 사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이름이다. 이삭은 왜 새로운 이름을 주시지 않았을까? 삶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삭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는 순종의 사람이었다. 다른 분들은 변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14. 이스라엘보다 먼저 에돔의 왕들이 등장한다. 하나님께 복을 받은 이스라엘이 버려진 에돔보다 못해 보인다. 짧게 보면 그렇게 보인다. 에돔의 왕이 우리가 아는 왕정제도와 어떻게 다른가? 세습이 아니었다: 선출제였는지 지명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습보다 더 발전한 걸까? 아니면 왕권이 약한 탓이었을까? 이렇게 왕을 중심으로 번성한 것도 결국은 허무하게 죽은 부자의 모습(눅 12:20)과 비슷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