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6장 |
특별 연보를 하지 말라는 말이다: 평소에 준비해두었다가 하라. 2. 이를 얻은대로? 장사하는 사람들인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란 말이다. 때로는 수입에 따라, 혹은 형편에 따라로 번역됨. 형편대로란 말은 형편이 어려운 사람도 많고 적음을 떠나서 해야 한다(=각 사람이)는 말이다. 지정한 액수대로 하라는 것에 비하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3. ‘매주일 첫날에’가 수식하는 말은? 저축하여: ‘이를 얻은대로’를 수식한다고 생각하면 매주 첫날에도 일을 하는 셈이 되고 수입의 7분의 1을 연보하라는 말이 된다. ‘매주일 첫날’은 ‘매 안식일 후 첫날’이란 뜻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모이던 주일이다. 주일에 모일 때마다 얼마씩이라도 모아두라는 말이다. 4. 너희의 지정한 사람(3)은 무엇을 하기 위한 사람인가? 고린도 교회가 연보한 것을 예루살렘까지 가지고 갈 사람(3, 행 20:4): 바울 자신이 연보를 거두어서 가져가도 될텐데? 어쨓은 바울은 자신이 직접 가져가지는 않았다. 불신자들은 교인들이 헌금하는 것을 목사가 다 가지는 줄 아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 저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교회의 재정을 목사가 직접 다루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일을 위해서 집사를 세우지 않았던가? 3절의 편지는 고린도 교회가 예루살렘교회에 쓴 것이다. 5. 헌금 때문에 시험에 든 사람이 많은 탓에 어떤 목사님은 헌금 얘기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데 바울은 이방인 교회에, 그것도 세워진지 얼마 되지도 않는 교회들에게 왜 이렇게 헌금 얘기를 많이 하는 걸까? 예루살렘으로 가져가려고(3): 행 11:28, 갈 2:10을 참고하면 예루살렘 성도들이 어려움에 처해있었기 때문이다. 훗날 바울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방문하지만 이 때만해도 꼭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4). 6. 연보(버릴捐, 고칠, 도울補)란 말은 돈을 드려 돕는다는 말이고 헌금(獻金)은 돈을 바친다는 말이다. 바울은 이것을 무엇이라고 달리 표현하는가? 은혜(3, = 선물, 고후 8:4): 헌금을 교회가 강요해서 갈취하는 것처럼 인식하는 불신자들이 적지 않다. 그런 느낌이 나도록 한 것은 교회의 잘못이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하나님께 되돌려 드리는 의미와 그 은혜를 함께 나누는 감격이 헌금이다. 바울을 이것을 교제(롬 15:26), 섬김(롬 15:31, 고후 8:4, 9:1), 축복(고후 9:5)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7. 금방 고린도로 갈 듯하다더니(6)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치 아니한다니(7)? 그냥 지나가면서 보는 것이 아니라 당분간 머무르겠다는 표현이다 = 이는 주께서 만일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유하기를 바람이라(7, 3) 8. 가고 싶으면 가는 것이지 굳이 ‘너희가 나를 보내주기를 바라면서’ 찾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6b)? 선교여행에 대한 후원을 말한다: 여행에 필요한 제반 필요를 채워달라는 의미이다. 선교는 바울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이런 저런 후원을 하는 성도, 교회가 함께 함으로 가능한 일이다. 9. 본문에 나타나는 바울의 현재 위치와 차후 여행지를 정리한다면? 에베소(8, 현 위치) → 마게도니아 → 고린도 → 예루살렘(= 나의 갈 곳으로, 6). 10. 당장 마게도니아나 고린도로 갈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구체적인 내용을 사도행전 19장을 참고하세요.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전도의 문)이 열리고 대적하는 자가 많았기 때문: 에베소의 부흥이라고 할까(행 19:17-20)? 엄청난 역사가 있었지만 또한 데메드리오와 같은 자들의 소동도 있었다. 11. 고린도에 가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었지만 에베소를 떠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바울이 취한 두 가지 조치는 무엇인가? 디모데를 파송하는 것과 편지를 보내는 것: 디모데는 곧장 고린도로 보내진 것이 아니라 마게도냐를 거쳐서 갔다(행 19:22). 그 사이에 편지가 먼저 보내지고 디모데는 나중에 도착해서 어느 정도 교회의 문제를 수습하고 다시 돌아오라고 보낸 것 같다. 12. 조수 디모데를 보내놓고 디모데에게 협력하라고 당부하는 것은 디모데가 약해서 그럴까? 그렇게 약하면 이렇게 씨끄러운 교회에 보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나이가 어린 것에 대한 염려일지 모른다(딤전 4:12). 13. 디모데를 보내면서 평안히 돌아오게 협력하라고 당부하는데 아볼로는 가라고 해도 안 갔던 모양이다. 반항 아냐? 디모데는 고린도 교회의 급한 문제만 해결하고 돌아오기를 바라고 아볼로는 고린도에서 사역하기를 원했던 모양인데 아마도 에베소의 일이 더 급했던 모양이다. 권하였다는 말로 보아 아볼로는 바울과 대등한 관계에서 사역을 했던 모양이다. 14. 교회에서 모든 일을 사랑으로 덮어버리면 잘 될까(13-14)? 믿음 위에 굳게 선 사랑이어야 한다: 무조건 사랑으로 덮는 것은 브레이크없이 악셀러레이타만 밟는 꼴이다. 공의와 사랑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비슷하게도 감사없는 정직은 시비가 되기 쉽다. 은혜와 진리도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진리에 대한 면밀한 판단없이 은혜로 지나가는 것도 위험하기는 일반이다. 15.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첫 열매라고 하던데(고전 15:20, 23) 스데바나의 집을 가리켜 첫 열매라고 하는 것은 같은 의미일까? 다르다. 예수는 부활의 첫열매이고 스데바나의 집은 전도의 첫열매다: 소위 새신자다. 예수 믿기로 작정한 것을 성도들을 섬기기로 작정하였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한다. 교제하는 것은 기본이고. 16. ‘교회 일에 너무 열심내지 말라’고 충고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에 대한 실망 때문이다. 열심히 충성하는 사람에게 협력하기보다는 시기하여 엉뚱한 말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는 일이 좀 어설퍼도 일을 맡아서 열심히 하는 자에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복종하라(16b): 교회 일은 하기가 참 어렵단다. 다들 똑독해서 말도 많고 탈도 많단다. 일은 하지 않고 남이 해둔 일을 폄하하는 일은 잘 한단다. 자신이 나서지 않았다면 일이 좀 잘못되었더라도 비판하지 말고 인사나 해야지!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 주라’고 한다(18). 17.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어디서 어디로 왔다는 말인가? 고린도에서 에베소로(바울이 있는 곳): 아마 이들이 와서 고린도의 여러 소식을 전해주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고린도전서를 기록하게 되었고. 브드나도와 아가이고는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어쩌면 스데바나의 하인이 아닐까? 18. 아시아의 교회들이란 어떤 교회인가?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집에 있는 교회를 중심으로 한 주변 교회들: 여기서 말하는 아시아는 오늘날의 아시아가 아니라 당시 로마가 다스리던 한 지방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터키의 한 주이다. 당시에 아굴라 부부가 에베소에 있었으므로 기록 장소가 에베소임을 증거하는 셈이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하고 있었지만 주변의 여러 교회들에게도 동일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19.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20)고 했으니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입을 맞추며 인사해야 하나? 당시의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 문자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 말씀에 근거해서 어떤 목사가 모든 성도들과 소위 키스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단다. 똥대가리! 20. 주께서 임하시느니라(22)는 말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로도 번역되었다(계 22:20). 이 말은 아람어로 ‘마라나 타’인데 헬라어 본문에 외래어가 끼여든 것이다. 그만큼 당시에 흔하게 사용된 말이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이 말을 주로 인사말로 사용했다. 여기서는 인사라기보다는 경고로 사용되었다. 같은 말이 어떻게 인사로도 쓰이고 경고로도 쓰이는가? 주님의 임재는 믿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행복을 가져다 주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엄청난 진노를 퍼붓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