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4장 |
그런 경우에는 대체로 목사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음도 알아야 한다. 심지어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헌신하고 노력했음에도 이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평가에 귀기울이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냉철함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고 하겠다. 2. 성도들이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자는 누구인가? 자신 뿐만 아니라 아볼로(6), 디모데도(17):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지도자가 다 권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성도들을 위해서 그렇다. 혹시 문제가 있더라도 다른 지도자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아버지가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어머니의 권위가 손상되게 해서는 안된다. 3. 본문을 근거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므로’(2) 부디 충성하라고 말하면 뭔가 이상하다. 왜 그런가? 여기서는 우리가 그렇게 충성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바울을 가리켜 함부로 사도니 아니니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4. 너희가 나를 향하여 사도니 아니니 하는 것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3)? 그러면 왜 그 문제를 이렇게 길게 언급하는가? 개인적인 이해관계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영향을 준다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사도됨을 변호해야 한다. 자기가 사도인지 아닌지 자신에 대한 자신의 판단조차도 제쳐두고 예수께서 뭐라고 하시는지에만 귀를 기울이겠단다. 5. 자책할 것을 깨닫지 못할 정도라는 것(4)은 자랑하는 말 아닌가? 스스로 자신을 판단치 않는다고 말해놓고(3)? 사도의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서 진정으로 최선을 다 했지만(4) 그것이 자랑거리가 되지 못함(3)을 알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최선을 다 해도 여전히 주님 앞에 무익한 종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또 열심히 일해야 한다. 6. 우리가 판단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고? 최소한 옳고 그른지, 싼지 비싼지, 바보짓을 하는 것은 아닌지 따져야 되잖아? 예수 그리스도의 판단만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겠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칭찬도 예수 그리스도의 칭찬에만 마음을 두겠다는 것이다. 매사에 아무런 생각없이 살 수는 없다. 매시 매초마다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런 판단도 없이 생각없이 살라는 말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요하다고 여기신다면 나도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너희가 나를 사도가 아니라고 해도 예수께서 사도라고 한다면 나는 사도이다. 7. 지도자가 당연히 본을 보여야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바울과 아볼로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제대로 본을 보였다. 무슨 본을 보였는가?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않는 것(6): 성경말씀이 모든 가치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을 몸소 본을 보였다는 말이다. 사람이 성실하게 사는 것도 귀한 일이지만 가장 귀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고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말씀보다는 교회의 전통이나 체면, 어떤 특정인의 기분에 따라 좌우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8. 성도들이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은 원인이 무엇인가?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간 것: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다면 어떻게 성도간에 파당이 만들어져 서로 싸울 수 있겠는가? 서로가 잘 났다고, 서로가 똑똑하다고 아무리 우겨도 파당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 지도자가 본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가서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7-8)? 그게 왜 잘못인가? 구별, 자랑(7): 자신들이 받은 은사, 복음이 마치 자기들의 것인 양 뻐기고 남을 무시했다. 그래서 서도 대적하고, 교만한 마음을 품었다.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것을 마치 자신의 능력으로 얻은 것인 양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처럼 호언하는 분들이 많던데... 주의해야 할 일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 부모, 친지, 선생님들에게서 받은 것임을 아는 사람은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 10. 우리 없이 왕 노릇 하였도다(8)? 우리가 왕노릇 해야 하는 건데? 바울의 가르침이 없어도 충분하다는 교만을 지적하는 것: 바울이 원하는 것은 모두가 함께 왕노릇 하는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이 지금 왕노릇하고 있으면 주께서 오시는 그 날에(5) 함께 왕노릇 하지 못하게 된다. 11. 겸손하게 본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하니까 어떻게 하겠다는가? 내가 (너희의) 왕노릇 해야겠다: 너희가 하나님 나라에서 왕노릇하도록 하기 위해서 야단을 좀 쳐야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원어상으로는 ‘너희의’가 아니라 ‘너희가’이다. 다른 번역들은 대체로 ‘너희가 왕 노릇 하기를 바라노라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이다. 우리가 (그 날에)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너희가 (지금 제대로) 왕 노릇 하기를 원하노라는 의미이다. 12.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의 구경거리로 만드신 것 같다는 말씀이 어떻게 고린도 성도들에게 혹독한 책망이 될까? 스승인 우리는 이렇게 구경거리가 되었는데 너희는? 도대체 무얼 배웠느냐는 말이다. ‘내가 그렇게 가르쳤느냐?’고 호통치면서 제자를 쫓아내는 스승인 셈이다. 13. 바울은 절대로 미련한 사람이 아니다. 당대 최고의 학문을 배운 사람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미련한 사람이 되었는가? 그리스도의 연고로: 그리스도 때문에 낮아질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복음 때문에 모든 사람의 종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절대로 낮아질 수 없는 사람이 복음 때문에 낮아진다면 얼마나 아름다운가! 14. 요컨대 바울은 구경거리요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다. 반면에 고린도 성도들은 무엇이 되었는가? 부자, 왕: 잘 한다. 어디서 그 모양으로 배웠느냐? 이런 식의 책망이다. 15.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다가 잡혀왔다. 불려온 학부형이 선생님께 자신의 담배를 권했던 모양이다. 아버지께서 피우던 담배가 학생들이 피우던 것보다 질이 낮은 것이었다. 선생님께서 탄식했다 ‘아는 500원 짜리 피우고, 아버지는 200원짜리 피우다니...’ 이런 현상이 정상인가? 본문의 어떤 내용이 이와 비슷한가? 9-13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스스로 이렇게 미련해졌는데 너희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스승은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제자들은 저렇게 잘 나간다. 그럴 수 없다! 16. 부모가 자식을 야단치더라도 적절하게 달랠 줄도 알아야 한다. 성질난다고 제 분풀이만 해서는 안된다. 바울은 어떻게 아비 노릇을 잘 하고 있는가? 7-13절은 신랄한 책망, 비난이다. 그러나 14절부터 온화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달랜다. 야단만 치는 아비가 아니라 사랑하는 아비임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17. ‘나는 너희의 스승이기보다는 아비니라’고 했는데 스승과 아비의 차이가 무엇인가? 본문의 ‘스승’은 갈 3:24절의 ‘몽학선생’이란 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자. 오늘날의 스승과 의미가 다르다. 어린 아들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치고 학교에 데려다 주는 노예를 가리키는 말이다. 아비와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그러니 일만 스승이 있어도 한 아비와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18. 세상에 어느 누가 ‘나를 본받으라’고 했는가? 성도들을 향해서 자랑말하고 하던 바울이 세상에 이보다 더한 자랑이 있는가? 바울 외에는 없는 것 같다. 자기를 들어내려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나를 보라. 그리고 예수를 보라.’ 19. 디모데가 무슨 방법으로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가? 내가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함으로(17): 무슨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배웠던 말씀을 생각나게 함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고린도 교회는 말씀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말이다. 20. 16:8절에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유하려 함은’이란 말씀이 있다. 그러면서 여기서는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라고 하는 것은 모순 아닌가? 에베소에 더 머물러 있어야 할 필요가 있음에도 속히 가야겠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21. 능력을 알아보겠다는 것(19)은 결과를 가지고 판단하겠다는 말 아닌가? 동기나 과정을 무시하는 말 같기도 한데? 여기서 능력이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다운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말씀대로 사는지 살펴보겠다는 뜻이다.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능력이다. 이런 순종없이 말만 무성한 것은 책망받을 일이다. 22.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이 말을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간단하게 줄여보라. 제발 말로 할 때 들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