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5장


1. 성도가 음행(포르네이아 →포르노)을 저지를 수 있나?

    절대 불가(레 18:8, 신 22:30):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은 그만큼 말씀에서 멀어졌다는 증거이다. 원문에는 서두에 ‘심지어’라는 단어가 있다.

2. 고린도는 부유한 항구도시였다. 아프로디테를 섬기는 신전 여사제(=창녀)들이 천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래서 성적으로 문란한 곳이었다. 그런 자들에게도 없는 음행이란 것이 따로 있나?

    아비의 아내(아마도 첩이나 계모)를 취하는 것(단회적인 경우가 아니라 지속적인 것을 의미함):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무슨 짓인들 못할까마는 이런 고린도 사람들에게는 흔치 않은 짓이었다는 말이다. 르우벤이 단 한번 이런 실수를 하여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는가!

3. 그런 음행을 저지르고도 오히려 교만하여졌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세속적인 생각을 가지고 당당하였음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외형상으로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나 실제로는 전혀 변화되지 않은 이방인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거짓교사들의 거짓 가르침 때문일지도 모른다. 구원받은 성도는 모든 죄에서 용서함을 받았기 때문에 어떤 짓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믿고 더욱 당당해졌을지도 모른다. 이런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무리들이 오늘날도 있는 것처럼!

4. 마땅히 징계를 받아야 할 사람이라도 바울이 독단적으로 징계를 내리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징계하는가?

    모여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주 예수의 능력으로(4): 교회의 치리는 개인적인 감정이나 인간적인 이유로 행하는 것이 아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바를 잘 깨달아서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이다. 혼자서 독단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바울과 고린도 성도들이 함께 모인 것은 아니지만(영으로 모였으니) 모인 것이나 다름 없을 만큼 확실하다는 뜻이 아닐까?

5. 이런 음행을 저지른 자를 어떻게 하라고 하는가?

    사단에게 내어주라: 쫓아내라는 말이다. 요즈음 말로 하면 출교에 해당하는 것이다.

6. 육신은 멸하고 영은 구원을 얻는다(5)? 그럴 수도 있는가?

    육신이 죽음으로 영혼이 구원을 받는 법은 없다: 다만 징계를 통해서(=육신을 멸하는 것) 다시 회개할 기회를 갖게 하는 것(영혼의 구원)으로 생각할 수 있다. 교회의 징계는 회개를 위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어야 하지 징계를 위한 징계가 되어서는 안된다.

7. 음행을 저지른 자를 용납하는 교회가 무슨 자랑을 했을까(6)?

    고린도 교회는 자랑할 것(=온 덩어리)이 많은 교회다(‘자랑하는 것’의 원어상 의미는 자랑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랑하는 ‘내용’을 뜻한다). 각종 은사 받은 자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행을 용납한다면(=적은 누룩) 그런 것들이 전혀 자랑거리가 아니다. 사소하게 보이는 죄라고 용납한다면 아무리 능력이 많아도 곧 쓸모없는 것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8. 누룩없는 자에게 누룩을 내어버리라는 것은 말이 안되잖아?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말이 안되는 사람이다: 우리는 분명히 죄짓고 사는데 죄없는 자라고 불러주신다. 용서 받았으나 그 신분에 합당하게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기억하며 감사하면서 신분에 맞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바로 이 일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이다.

9.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는 것과 그리스도의 희생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가 누룩없는 자가 되었으니 과거의 더러운 흔적을 깨끗이 털어내야(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는 것)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희생을 헛되게 하는 것이다.

10. 바울이 지키자고 하는 명절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누룩없는 떡(8): 누룩없는 떡을 떼던 절기인 무교절(유월절에 이은 절기라서 나중에 같은 절기로 취급됨, 눅 22:1)을 염두에 둔 표현같다. 유월절 양의 희생을 말하고(7) 이어서 누룩없는 떡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유월절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유월절(=새로운 유월절)을 지키자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바로 유월절을 지키는 삶이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억하는 것, 어린 양의 희생으로 구원받음을 기념하면서 사는 것이다. 성찬을 통해서 그런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11. 성도가 누룩을 내어버려야 한다면 누룩을 즐기는 이방인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이방인들이 그러는 것이야 관계하지 않더라도 형제가 그러면 내어쫓으라! 그런 이유로 이방인들과 사귀지 않을 수는 없다. 오히려 전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형제가 그러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바울이 이전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고 했더니 그런 모든 사람들과 교제를 끊어야 하는 것으로 오해를 했던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사귈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적어도 고린도에서는 말이다.

12. 교회가 용납할 수 없는 악한 짓을 저지르는 교회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없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다. 굳이 할 일이 있다면 전도하는 것 뿐이다. 일단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교회가 할 일이 있으니 들어오게 하는 일이 가장 우선이다. 교회 바깥의 사람들을 교회의 기준으로 책망하고 판단하는 일은 별로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단군상을 만들어둔다고 ‘단군은 우상이다’라고 시위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처사가 못된다. 효과적인 방식에 대해서는 좀 생각해봐야 한다. 공공장소에 세울 수 없는 법적 근거를 따지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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