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7장


1.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단순한 교제, 성적인 방종, 결혼? 2절을 참고로 해서 생각해보자.

    음행을 피하라: 2절은 결혼하라는 말이다. 그러니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는 것이 정상적인 결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고린도가 성적으로 몹시 문란했던 점을 감안하면 그런 세태를 본받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2. 만약에 총각이 선을 보는 자리에서 결혼해야 할 이유를 ‘성적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면(2, 9) 어떻게 될까?

    100% 퇴짜를 맞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생각을 수용할 처녀는 없을 것이다. 대신에 한 마디 한다면 ‘짐승’ 아닐까? 그러나 결혼에서 이 문제가 대단히 실제적이고도 중요한 것이란 점에서 사도 바울의 가르침은 참으로 요긴하다. 부부간의 성문제가 결코 피해 가야 할 것이 아니므로 진지하게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그렇다고 맞선보는 자리에서 이런 성경구절을 들이대가며 용감하게 나설 필요는 없다. 그것이 결혼의 가장 중요한 점은 아니기 때문이다. 분위기도 파악해가며, 절차를 따라가며 일을 진척시키는 것도 지혜이다.

3. 남편이나 아내가 상대방에게 다 해야 할 의무가 무엇인가?

    부부간의 성적인 의무: 서로가 성적인 욕망을 채워줘야 한다. 남녀의 성적인 욕구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지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줘야 한다(출 21:10). (결혼 초기에는 남자들의 욕구가 워낙 강해서 많은 부인들이 남편을 변태이거나 병적인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듯한 모습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그래서 생겨난 우스개가 신혼은 ‘한 사람은 신나고 한 사람은 혼나는 기간’이란다. 남녀간의 성차에 대해서 꼭 미리 알아두시기 바란다, 특히 여자들이.)

4.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한다’는 말(4)의 구체적인 의미는?

    남편이나 아내의 성적요구를 거절하지 말라는 뜻: 부부에게는 더 이상 자기 몸이 자기만의 것이 아니다.

5. 함부로 분방도 하지 말라는 말씀을 생각해보면 부부가 오랫동안 헤어져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헤어져 있음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는 그에 따른 위험이 훨씬 더 크다. 남편과 아내가 분방할 수 있는 조건 세 가지는 무엇인가?

    특별히 기도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합의상, 얼마동안: ‘기도할 틈’이란 ‘몰두할 수 있는 여가를 얻기 위한 것’이다. 평소의 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특별한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6. 분방하지 말라는 말씀을 참고하면 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해서 여러 날 집을 떠날 목사 남편을 위해서 사모님이 뭘 준비해야 할까?

    성관계: 거룩한 일로 떠나는 목사님께 그 무슨 말씀인가 싶겠지만 준비해야 할 많은 것 중에 하나다. 송길원 목사의 책(사모의 심장, 규장, p220)에서 인용하면 ‘외부 집회인도나 세미나 참석 차 집을 비울 때는 그 전후로 반드시 성관계를 가진다’

7. 반드시 지켜야 할 것(명령)도 있지만 참고로 들어야 할 말씀(권도)도 있다. 그러면 5절의 말씀은 어느 것일까?

    반드시 지켜야 할 것: 결혼한 사람의 의무에 대한 것이므로 이것은 권고 사항이 아니다. 뒤이어 나오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바라는 것’이야말로 권고 사항이지 명령이 아니다.

8. 만약 모든 사람이 바울 같으면 어떻게 되나?

    다음 세대에 교회 문을 닫아야 된다. 자식이 아무도 없으니...: 하나님께 받은 은사가 다르다는 말은 모두가 나처럼 되지는 말라는 뜻이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나처럼 지내라는 말이지 무조건 결혼하지 말고 바울처럼 살라는 말이 아니다.

    결혼만 하지 않으면 바울 같아지는 걸까? 이 부분이 성적순결을 강조하는 문맥이란 점을 기억하자. 결혼하지 않고도 성적으로 순결한 삶(=정욕을 절제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바울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이다.

9. 정욕이 불같이 탄다? 정욕이 무엇이길래 불같이 타는가? 실제로 그렇게 위험한가?

    이해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욕이란 것을 절대로 가볍게,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일생에 걸쳐 수고한 모든 것을 단 한 번의 불장난에 깨끗이 날려버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위험성을 알고 대처하는 것이 지혜롭다.

10. 이혼하지 말라는 이유가 뭘까?

    결혼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주가 제시한 인류의 존재방식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조차 결혼에 빗대어 설명하기도 했다(렘 3:14). 결혼이 온전하게 유지되지 않는 사회는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사회이다. 성적으로 방탕하기 시작하면 사회 구석구석이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11.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 받을 것이 없느니라’는 말씀(15)은 결혼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 아닌가?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서 신앙을 버려야 하는 어려움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결혼을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갈리거든’이라는 말은 어쩔 수 없이 갈라져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화평할 수 있으면 화평을 이루어야 한다.

12. 믿지 않는 남편이라도 함부로 이혼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구원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혼을 너무 종교적인 문제에 얽어매는 것 아닌가? 결혼으로 말미암아 믿음을 저버리게 될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결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라면 하나님께서 화평 중에서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이다(15).

13. 믿는다는 것은 새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거듭났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 전의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하는가?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17): 변해야 할 것이 있고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 19)이 필요하다. 무조건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믿기 전에 하루 세 그릇 먹던 사람이 믿고 나면 두 그릇을 먹어야 하나? 그건 아니다. 다만, 자신의 입만 생각하고 먹던 사람이 이웃을 생각하고 먹는다는 점이 다른 점이다.

14. 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명령이기도 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것을 지키느라고 목숨을 걸기도 했는데?

    할례의 진짜 의미를 알고 나면 할례는 그림자요 (성령)세례가 진품이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할례나 무할례는 아무 의미가 없다. 종이나 자유자나라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판에 할례, 무할례가 무슨 큰 일이겠는가!

15. 종의 신분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면 무슨 염려(21)가 있었을까?

    아마도 ‘종 주제에 예수를 믿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혹은 ‘주인과 함께 믿으면 천국에 가서도 종이 되는 것 아냐?’ 이런 류의 염려 아닐까?

16. 사람의 종이 되지 말라고(23)? 누군 되고 싶어서 되었나? 교회에 오면 주의 종이고 집으로 가면 주인의 종이다. 어쩌란 말인가?

    현실적으로는 종이지만 이제 주의 종이란 신분으로 변하였으므로 종의 마음이 아닌 자유자의 마음으로 살라는 것이다. 잠간 종으로 있을 뿐 영원한 자유자가 되었다는 마음의 자유를 누리라는 말이다.

17. 종이 예수를 믿으면 자유자가 되고 자유자가 예수를 믿으면 종이 된다(22)? 이런 법이 어디 있나?

    주 안에서는 종이나 자유자나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종으로 있는 자에게는 자유자가 되는 것이 소원일진대 주께 속한 자유자라고 말하고, 자유자에게는 주의 종이니 너무 자고하지 말라는 충고이다.

18. 그러니까 종에서 해방되라는 말인가? 그냥 그대로 있으라는 말인가?

    예수를 믿는 것이 중요하지 종이나 자유자냐 라는 것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어떻게 보면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전혀 없는 듯하다. 그러나 사회적 구조를 바꾸는 것보다 영적인 상태를 분명히 가르쳐두는 것이 오히려 더 유익한 사회적 변혁을 초래하였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노예가 해방되었다. 제도적으로 백인과 흑인이 평등하게 만들어 놓았지만 실제로 평등이 실현되지 않는 모양이다. 말씀으로 생각을 바꾸는 것이 진정한 변혁이다.

19. 혼인에 대한 바울의 견해는 가급적 하지 말라는 쪽에 더 무게가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일반적인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특수한 경우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바울이 이렇게 권하는 특수한 상황이란 무엇인가?

    임박한 환란(26, 28, 29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아마도 곧 불어닥칠 환란을 예견하고 있는 듯하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다가 하도 고되니까 하는 말이 ‘절대 아들은 낳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들이 정말 아들을 낳지 않았을까? 그들이 처한 특수한 상황에서 하는 말이지 상황이 달라지면(군대가 좋아진다거나, 훈련이 끝나고 뿌듯함을 느끼거나) 마음도 달라질 수 있다. 살후 2:2을 참고하면 이 환란이 예수의 재림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다.

20. 때가 단축되었다는 말은 재림이 임박했다는 말 같은데 바울도 재림의 시기에 대해서 오해가 있었는가?

    항상 종말을 염두에 두고 살라는 뜻: 예수님께서는 언제 다시 오실지 가르쳐 주시지 않았다. 그러므로 항상 종말을 대비하는 자세로 살라고 하신 셈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런 미련도 없이 평생을 살아야 하는가(29-31)? 세상의 그 어떤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결혼이든, 재물이든 그것에 매여 살지 말라는 것이다.

21. 위대한 사도 바울이지만 결혼을 통하여 더 큰 기쁨으로 함께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은 모르는 모양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남편이나 아내 때문에 줄어들 수도 있지만 오히려 더 깊어질 수도 있는데... 요는, 이런 말씀의 핵심이 무엇인가?

    분요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35): 결혼하지 않는다고 반드시 주의 일에 힘쓰며 주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결혼해도 그 반대일 수 있다.

22. 36절의 ‘처녀 딸에 대한 일’이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혼인시키는 것: ‘이치에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하는 것’이란 어떤 번역은 ‘약혼을 파기하고 다른 사람과 결혼시키는 일’로 번역하였다. 아마 결혼을 추진하는 것이 온당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 만한 잘못이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결혼을 시키라는 말 같다. 바로 다음의 ‘부득이한 일도 없고’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3. ‘처녀 딸을 시집 보내는 자도 잘하거니와 시집 보내지 아니하는 자가 더 잘하는 것이니라’는 말씀에 따르면 굳이 시집가라고 조를 이유가 없네?

    일반적인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36절의 ‘이치에 합당치 못한 줄로 생각할 때’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37절의 ‘마음을 굳게 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등의 표현을 참고하면 특수한 문제가 생겨서 혼인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옳다고 여길만한 경우에 해당하는 말이다.

24. 그 옛날에도 재혼을 허용했네! 불신 남편과 사는 성도들에게 그대로 살라(12-13)고 하면서 재혼할 때는 주 안에서만 하라는가?

    전자는 이미 그렇게 된 상태에서 하는 말(=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이고 이 경우에는 새로 시작하는(=선택의 여지가 있는)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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