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1서 5장


1. 처가 예쁘면 처가집 말뚝보고 절한다던가? 그와 같은 말을 찾아보자.

    내신 이(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자녀)를 사랑하느니라(5:1):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를 당연히 사랑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형제를 사랑하는 이유는 하나님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미울 수밖에 없는 형제도 사랑할 수 있다. 그래도 미운 놈이 있던데? 무엇 때문에 그런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하나님보다, 하나님의 일을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렇게 만들 수도 있고, 개인적인 이기심이 작용하는 수도 있고... 목표를 ‘하나님의 일’보다는 ‘하나님 사랑’에 두어야 한다.

2.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라는 표현과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란 표현을 비교해보자. 무슨 차이가 있을까?

    전자는 믿음이 먼저 자녀가 되는 것이 나중이란 표현이지만 후자는 태어나는 것이 먼저고 믿는 것이 나중이다. 실제로 원어가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다(믿는 = 현재시제, 난 = 완료시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믿게 되었다는 의미가 강하다.

3. 형제 사랑의 전제조건은 무엇인가? (이것이 없으면 형제를 사랑하노라 하고 애쓰고 노력해도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말인 된다)

    하나님 사랑(2): 믿음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는 말도 동일하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이웃이나 가족에게 진정한 사랑을 베풀 수 없다.

4. 하나님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란다(3). 정말 그럴까?

    인간적인 노력으로 지키려면 불가능할 정도로 무거운 것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면 쉬워진다. 스스로 진 짐은 무겁지 않음과 비슷하다. 예수님도 ‘나의 멍에는 가볍다’고 하셨다(마 11:30). 우리의 생각과 뜻이 하나님의 생각과 뜻에 일치하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쉬워진다는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뜻에 따라 자원하여 행하는 일은 아무리 육체가 고되어도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신앙을 가지자.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서 자유로운 것보다 구속되는 것이 더 행복하고 더 자연스럽다. 그의 계명이 결코 무겁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5. 여기서 ‘세상’이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다(2:15-17). 어떻게 이런 것들을 이기는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야(5): 이것이 우리 믿음의 핵심이다. 자기 자신을 믿으라고 하는 자신감이나 자기 최면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신 그 능력을 힘입어 이기는 것이다(요 16:33).

6. 세상을 이긴다고(4)? 누가 들으면 웃을 일이다. 이 세상은 얼마나 많은 사람, 얼마나 놀라운 지혜가 있는데 이것을 믿음으로 내가 이긴다고? 그럼 내가 세상의 주인이 되는 거야?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세상을 이긴다는 게 무슨 말인가?

    세상에 압도(굴복)당하지 않고 제 길을 간다는 의미: 흐르는 강물과 맞서서 이 물을 거꾸로 밀어 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세상을 이긴다는 말은 이 흐름에 압도당하지 않고 내 갈 길을 간다는 뜻이다. 작은 배를 하나 띄우면 가능하다. 모두가 돈을 버는데 혈안이 되어 있을 때 돈보다는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은 그런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 모든 흐름에 휩쓸리지 않게 우리를 지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이 믿음은 결코 힘들고 어렵게 우리를 이끄는 것이 아니다. 온갖 물결을 가볍게 넘어가는 방법이다.

7. 초대 교회의 이단, 영지주의자들은 ‘천상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을 때 예수에게 임하셨다가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에 예수에게서 떠나셨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예수께서 육체로 이 땅에 오셨음을 부인하였다. 아마도, 이런 사실을 반박하는 요한의 표현은 무엇인가?

    물과 피로 임하셨다: 물은 세례, 피는 수난을 의미한다. 육체로 오셔서 세례를 받으셨고 십자가에서 모진 고통을 다 겪으셨다는 말이다.

8. 하나님께서 언제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셨는가?

    예수께서 세례 받을 때에 요한이 증거 하였다(요 1:31-34).

9.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간하는 기준이 ‘우리의 말’이네(6). 우리의 말이 구체적으로 뭘까?

    성령, 물, 피: ‘성령과 물과 피 셋이 합하여 하나라’(8)는 말은 ‘의견이 하나로 합치됩니다’라는 뜻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세례(물) 시에 요한이 증거 했고(요 1:32), 십자가상(피)에서는 로마의 백부장과 지키던 자들이 증거 했고(마 27:54, 막 15:39), 바위가 터지고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고 무덤이 열린 사건들도 있었다(마 27:51-54). 이 모든 과정에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

10. 하나님의 증거는 아들에 관한 증거이다(9b, 10c).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증거(차라리 ‘증언’)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영생(생명)을 주셨다. 그런데 그것은 예수 안에 있다(11절). 이것을 거부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다(10). 아담이 범죄한 직후에 하나님은 여인의 후손을 이 땅에 보내실 것을 말씀하셨다. 잃어버린 생명을 되찾기 위함이다. 바로 그것을 위하여 오랜 구원의 역사를 주관해 오셨으며 마침내 생명을 전할 독생자를 보냈는데 이것을 거부한다면? 구약의 모든 말씀이 바로 이것인데...

11. 사도 요한은 이미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이 글을 썼다. 전도용이 아니다. 이미 믿은 사람들에게 쓴 이유가 무엇인가?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고(13): 예수를 믿는다고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려주려고 썼다는 말이다. 믿기는 믿어도 그것이 얼마나 귀중한 의미인지 모르고 믿는 사람이 예나 지금이나 거의 대부분 아닐까? 성경을 배우고 공부하는 이유도 그럴 수 있다. 이미 얻은 것을 누리기 위함이다.

12.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하다고? 왜?

    하나님께서 들으시기 때문이다: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우리의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만들어주셨다.

13. 기도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무조건하고 졸라대는 것?

    그의 뜻대로 구하는 것(14): 그의 뜻을 안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굴복하고 순종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런 그 분의 뜻을 알려면 성경을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성경을 공부하면서 기도해야지, 성경을 배우지 않고 기도만 하는 것은 신비주의나 기복주의로 빠질 위험이 아주 높다.

14. 예수쟁이들은 쥐뿔도 없으면서 간땡이는 크단다. 사실인지도 모른다. 그만한 빽이 있으니. 무슨 빽?

    그의 뜻대로 구하면 들으시는 하나님.

15. 사망에 이르는 죄란 어떤 죄일까? 예수님께서 쓰신 표현이 있는데?

    성령훼방죄(마 12:31, 막 3:29): 요한의 문맥에서는 배교를 뜻한다. 그래도 돌아오도록 기도하면 안 될까? 아마도 그래서 강력하게 금지하지 않고 ‘구하라 하지 않노라’고만 말하는 것 같다.

16.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한단다(18). 예수님께서 마음 속의 욕심, 탐심, 질투도 죄라고 하시던데? 나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아니라는 말인가?

    고의적이고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죄를 말한다. 본의와 다르게 연약해서 저지르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렇게 실수할 수는 있지만 결코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지 아니한다.

17.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하나님 안이나 예수 안이나 같은 곳이다. 결국 우리가 그 안에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묘한 모습이다(요 17:21). 결국 성도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여(벧후 1:4)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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