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25장


1. 정직하나 온전한 마음은 아니었다는 평가는 이상하다. 온전한 마음이 아니었다면 정직한 게 아니지 않은가?

    아주 선한 왕도 아니고 아주 악한 왕도 아니란 말이다. 믿기는 믿는데 다른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드는 성도들처럼! ‘이왕 믿는 거 화끈하게 믿을 수는 없는 걸까?’ 이런 마음을 들게 하는 성도처럼 했던 모양이다!

2. 왕을 모반한 자들을 왜 이제야 죽이는가?

    일종의 성공한 쿠데타였기 때문이다. 모반한 자들이 실권을 잡고 있었는데 많은 시간이 지나서 요아스가 왕권을 확립하고 난 후에 죽였다. 성공한 쿠데타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 역사의 심판을 받기도 한다. 포악한 왕을 몰아내고 왕권을 가로채지 않고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도 사실은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잡을 수 있는 권력을 내놓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킬 때 흔히 하는 말 ‘나라가 바로 잡히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겠다’는 것이지만 믿기 어렵다. 자칫하면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짓이다.

3. 성경에는 연좌제가 없다(4). 그러면 아비의 죄가 3, 4대까지 이른다(신 5:9-10)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부모들의 죄가 지닌 영향력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부모의 약물 복용이나 알콜 중독, 잘못된 성생활로 인한 기형아의 탄생이나 그 외의 나쁜 영향력은 보통 3, 4대까지 영향을 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죄는 3, 4대까지 갚고 은혜는 1,000대까지 베푼다는 말씀은 어쩔 수 없이 벌을 준다 해도 벌하기보다는 은혜를 더 베풀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이 말씀에 근거해서 조상의 죄까지 회개해야 한다고 한 모양이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한다? 한국인이 가진 미신 같은 냄새가 난다. 아버지가 죄를 많이 지어서 아들은 믿어도 헛일인가? 그런 법은 없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은혜는 풍성하게, 벌은 아주 조금 흉내만 내려는 것’이다.

4. 역적의 자손들을 죽이지 않는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아마샤가 그만큼 말씀에 충실했다는 뜻인가?

    분명히 그런 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반을 하고 상당한 기간 동안 요직에 있었다. 세월이 상당히 흐른 후이기 때문에 회유책 없이 강공책만 구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5. 신명기는 요시야 시대(아마샤보다 200년 정도 후 시대)나 포로 시대 이후에 편집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신학자들이 있다. 기존의 전통을 모조리 뒤엎고, 이스라엘의 종교도 진화론처럼 발달되었다는 전제에 따라 고등종교의 내용을 담은 것은 후대의 작품으로 돌린 것이다. 그래서 신명기를 가장 후대에 편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그렇다면 4절이 그런 학자들에게 가장 골치 아픈 구절이 된다. 왜 그럴까?

    본문에서 아마샤가 지킨 모세의 율법책이란 신명기를 가리킨다. ‘자녀로 인하여 아비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비로 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6절)은 신 24:16의 인용이다. 신명기가 후대의 책일 수가 없어진다.

6. 30만이라는 군사가 적나?

    아사의 군대가 58만이었고(14:8) 여호사밧의 군대가 116만이었던(17:14-19)을 감안해 보면 적다고 볼 수 있다.

7. 이미 돈을 줬는데 포기하라고(9)?

    손해 볼 작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것은 복이다. 여호와께서 능히 더 많은 것을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는 따르기 어려운 일이다

8. 아마샤가 이스라엘 군대를 동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왜 싫어하시는가?

    하나님대신 이스라엘을 의지하기 때문: 전쟁에 이기고 지는 것이 하나님께 달린 것인데 하필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는 이스라엘 군대를 의지하려는가? 미워도 하나님 언약의 자손인 유다가 하나님을 져버린 이스라엘과 손잡는 것이 전혀 반갑지 않다. 여호사밧이 그랬다가 유다에 엄청난 고난을 안긴 것이 얼만 전인데...

9. 돈을 받고도 일하지 않고 돌아가는데 무슨 불만?

    앙심을 품은 탓이다: 무시당했다는 걸까? 더 많은 전리품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불만일까?

10. 아마샤가 돌려보낸 군사가 약탈한 지역이 ‘사마리아에서부터 벧호론까지’란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사마리아는 유다 땅이 아니라 북이스라엘의 수도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유다를 친 셈이다.

11. 아마샤는 어느 나라를 치러 갔는가? 세일 자손이 살던 바위 꼭대기란 표현을 참고하자.

    에돔: 세일산을 기반으로 살았던 에서의 후손이다(옵 1:3 참조). 왕하 14:7절의 셀라는 바위라는 말이다. 에돔이 유다의 속국으로 있다가 벗어난 것이 여호사밧 때의 일이다. 우상을 섬기는 아합 왕가와 친하게 지낸 결과로 유다는 국력이 급격히 쇠퇴하였다가 그나마 아마샤가 다시 에돔을 정벌한 것은 국력을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은 셈이다. 에돔에게 대승한 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왕이었기 때문이다.

12. 세상에 이런 바보짓을? 패전한 나라의 신을 가져와서 섬긴다? 구체적인 언급이 없으므로 추측해 볼 수밖에 없다. 왜 그랬을까?

    번지르르한 외양에 끌린 것 아닐까? 사람은 외모를 본다. 보기에 그럴듯하면 신이 될 수도 있다. 웃기는 얘기지만 그런 사례가 하도 많으니!

13. 출전할 때에는 선지자의 경고를 잘 듣더니 이제는 우습게 여긴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승리하고 난 뒤에 약간 흥분했나보다(19). 하나님 덕분에 이겼다고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을 텐데? 여하튼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이 비극의 가장 큰 원인이다. 여호사밧 이래로 참으로 오래만의 승리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왜 승리를 주셨는지 생각했어야 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삯을 내어 데려왔다가 돌려보낸 이스라엘 군인들의 행패겠지만 내면적으로는 교만이라고 보아야 한다. 한번 승리했다고 그렇게 사람이 변하는가? 그렇게 변하기 쉬운 것이 사람이란다.

14. 아마샤가 선지자의 말은 듣지 않아도 신하들의 말은 듣나 보다. 무엇이 다르기에 그럴까?

    대체로 하나님의 말씀은 책망인 반면에 신하들이야 입에 발린 소리를 했을 것: 에돔도 정복했는데 이스라엘인들 못 이기겠느냐는 식으로 아부를 했을 것이다.

15. 아마샤가 대면하자는 말은 한번 만나자는 뜻이 아니다. 요아스가 하는 말을 보면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막 먹자고? 가시나무가 어떻게 백향목과 같이 놀겠느냐는 것은 급수가 다르다는 말이다. 그렇게 까불다가는 들짐승에게 짓밟힐 것이란다. ‘급수가 다르니 까불지 마라. 집에 가서 애나 봐라!’는 것이다.

16. 요아스의 답변 내용 중에서 아마샤로 하여금 기분 나쁘게 하는 내용을 두 가지 지적한다면?

    자기는 백향목, 아마샤는 가시나무
    짐승에게 짓밟힐 것: 굳이 자기가 손댈 필요도 없다.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무시해도 유만부득이지... 아마샤는 그렇게 느꼈겠지만 애석하게도 결과적으로는 요아스의 말이 맞았다.

17. 요아스의 답변을 아마샤가 왜 듣지 않았을까?

    어차피 처음부터 들을 마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요아스의 답변도 들을 수 있도록 여지를 주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한판 붙자고 보낸 답변이다. 처음에 주의해야지 한번 발을 잘못 들여놓으면 빼기 어렵다. 쓸데없는 고집도 화근이지만 그런 고집을 부릴 수밖에 없는 상황자체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가출하면서 너무 큰 소리 치지 마라, 들어오기가 더 힘든 법이다.

18. 누가 먼저 전쟁을 시작했을까?

    이스라엘 왕 요아스: 유다 땅인 벧세메스에서 전쟁이 벌어졌다는 것은 요아스가 먼저 쳤다는 말이다. 6.25전쟁이 누가 일으킨 전쟁이냐에 대해서 엉뚱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원인을 깊이 따질 필요가 없다. 전쟁 초기의 양상을 보면 바로 답이 나오는 걸 가지고 왜 시끄러운지 모르겠다.

19. 유다의 군사들은 왜 장막으로 도망하였는가?

    군인이 군인이기를 포기했다는 말이다. 전쟁의 패배를 뜻하는 전형적인 표현이다.

20. 예루살렘 성은 그렇게 쉽게 점령되지 않는다. 강력한 로마의 군대에도 몇 년간 버티기도 했는데 여기서는 왜 이렇게 허무하게 당했을까?

    왕이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마샤가 용감하게 뛰어나간 탓일 게다. 요아스도 함부로 예루살렘을 침공한 것이 아니라 벧세메스를 공격했는데 아마샤가 경솔하게 뛰어나갔다가 사로잡힌 모양이다. 까불지 말아야 하는데...

21. 모처럼 왕을 사로잡았으니 통일왕국을 이루지 왜 그냥 두었을까?

    정복하는 것도 어렵지만 한 나라로 동화시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정통성이 약한 북이스라엘이 유다를 지배하기는 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럴 바에는 약한 왕을 세워 꼭두각시 정권을 만드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아마샤를 인질로 잡아가고 그 아들을 왕으로 세웠을 가능성이 크다.

22. 오벧에돔이 지키는 모든 재물을 빼앗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오벧에돔 가문은 성전의 곳간을 지키던 임무를 맡았다(대상 26:15). 그러니까 24절은 성전의 재물과 왕궁의 재물을 다 빼앗아갔다는 뜻이다.

23. 아마샤가 여호와를 버렸더니 무슨 일이 생겼는가?

    백성들이 그를 버렸다: 하나님의 징계는 자신이 행한 것과 아주 유사한 방식으로 임할 때가 많다. 아담이 하나님에게 거역했더니 모든 짐승들이 자신을 거역하고 심지어 땅도 아담에게 순종하지 않게 되었다.

24. 예루살렘에서 무리들이 왜 모반을 일으켰을까?

    포로에서 돌아온 아마샤가 섭정 왕이 되었겠지만 그런 상태에서 통치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패전과 포로생활이 통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