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1 장


1.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이 이토록 이해하기 어렵고 수용하기 어려운 일이었던가!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기억하면서도 베드로를 '힐난'하다니? 확고한 확신이 없이는 감히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할례자들이 그러했다고 하는 데 당시의 유대인들은 다 할례를 받았으니 자신들만 할례를 받은 것도 아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사람을 할례자들 이라고 했을까?

    예수를 믿으면서도 유대적인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한 신자들; 예수 믿고 한 형제가 된 것보다는 사회적, 경제적, 학문적 지위에 대한 우월감을 가진 채 교회 내에서도 끼리끼리 모이는 자들. ↔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던 바울과 대조가 됨

2. 베드로는 성질도 좋다. 나 같으면 이렇게 찬찬히 설명 못한다. 복음을 위하여 그 먼 길을 다녀 왔는 데 칭찬은 못할 망정 비난부터 하다니..... 본질적인 문제는 접어두고 지엽적인 문제점만을 물고 늘어지는 이 문제 많은 할례자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하는 베드로가 정말 정겹다. 베드로는 본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성미가 급하고 불같은 사람이었는 데 왜 이렇게 변했지?

    '성령을 받고 변화되어서' 혹은 '수양이 많이 되어서' 등과 같은 베드로의 변화도 어느 정도 관계가 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문제가 워낙 크고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 이다; 베드로의 이 사건 없이 바울이 등장할 수 없다. 베드로 자신도 그러하거니와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자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너무나 크고 중차대한 변화이기 때문에 자세하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베드로의 성격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급한 사람도 조용하고 차분해질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3. 하나님께서 복음을 이방인에게까지 전하도록 차곡차곡 준비하고 진행시키고 계시는 모습이 보인다. 빌립이 다니면서 사마리아에 불을 붙였고 뒤이어 베드로가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다. 베드로가 이론적인 배경을 제공했고 나중에 바울에 의하여 이방인 선교가 활짝 꽃피우게 되지만 실제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사람은 따로 있다. 이름없는 전도자들이었는데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환란을 피하여 간 사람들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20); 유대인 아닌 이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자 아마 동족들에게 전하지 않았을까? 이방인 전도에 진짜 불을 붙인 사람들이다. 이름없이 복음에 열정을 품었던 이런 사람들에 의하여 이방인 선교에 헌신한 안디옥 교회가 세워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들의 일이 계속될 수 있도록 베드로가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사실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되지만.

4. 베드로의 설명은 10장의 기록과 내용은 똑 같은 것이지만 보는 사람이 다르고 관점이 달라서 조금씩 차이가 보인다. 다음 몇 가지만 비교해 보자

    1) 천사는 두 사람이 왔다고 했는데 베드로는 세 사람이 찾아왔다; 내용을 잘 아는 천사가 보기에는 두 사람일 수도 있고 (베드로를 모시는 임무를 맡은 사람은 둘, 한 사람은 호위병?) 이 사실을 모르는 베드로의 입장에서는 세 사람이 맞다.
    2) 고넬료에게 갈 때 같이 간 형제가 6명이었을까? 10장에서는 그냥 두어 형제라고 했는데; 욥바에서 고넬료의 집까지 따라간 사람 외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동행한 다른 형제가 있었거나 아니면 고넬료의 하인들이 배웅의 임무를 띠고 예루살렘까지 동행을 했거나
    3) 성령의 임하신 때도 약간 다른 듯 싶은 데?; 10장에서는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설교한 후 인 것처럼 기록되어 있음. 여러 날 묵으면서 권속들에게 말씀을 전했으므로 첫 번 설교 때에 성령이 내리셨다고 해도 '말을 시작할 때'라고 말하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베드로가 설교를 잘 해서 성령이 임하신 것이 아니라 성령이 먼저 임하셨고 말씀이 그 위에 더하여 진 것이라는 점이다.

5. 사도행전이란 이름은 사도들의 사역을 기록한 책이란 느낌을 주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성령행전이 옳다. 베드로가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그 타당성을 설명하지만 이 일이 되어진 것도 성령의 역사이었다.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에서도 이름없이 헌신한 성도가 꼭 필요했었지만 이들이 주인공이 아니란 것을 분명히 밝히는 말씀은?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니(21)

6. 베드로의 눈에도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이 심상찮은 일이었을 것이다. 자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 되었을 것이다. 해결책은 어디에서 나왔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에서; 행1:5 요한은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위대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우리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말씀이 떠오를 만큼 평소에 많이 들어 두어야 하는 데....... 그래서 성경은 다독도 정독도 다 필요하다.

7.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면 환호, 찬양, 박수들이 어우러져서 시끌벅적할 것이다. 할례자들이 베드로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돌리는 영광은 다른 경우와 비교하면 어떻게 다른가?

    잠잠하고 독백하듯이 베드로의 발언을 인정함; 끓어오르는 격렬함이 있어야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말 없이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인정하는 태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8. 열심있는 전도자들이 있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안디옥 교회에 바나바는 꼭 필요한 사람인가?

    권위자요 훌륭한 교사인 그는 꼭 필요하다;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라 할 지라도 가르치고 권하는 일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교회가 잘못하고 있는 일 중에는 예수 믿기로 하고 교회만 출석하면 다 된 걸로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것은 출발일 뿐이다. 앞으로 가야할 길을 잘 가려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배워야 한다. 지속적인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9. 나중에 의견이 달라 서로 갈라서기도 하지만 바울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바나바이다. 왜 잊을 수 없는가?

    제자들이 기피하던 사울을 사도들에게 소개한 것도 바나바이며 적어도 10년 이상(갈2:1) 고향에 묻혀 있던 그를 불러내어 사도의 역할을 하도록 한 것도 바나바이다.

10. 초대교회 교인들이 얼마나 빛된 삶을 살았으면 백성들에게 칭송을 다 받았을까? 행2:47, 5:13에 보면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 제자들의 삶을 보고 칭송하였다고 한다. 그런 칭찬이 안디옥 교회에는 어떻게 나타났는가?

    그리스도인;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란 영광스런 뜻이다. 90년 대 말 한국에서는 이 말이 얼마나 치욕적인 의미로 쓰였던가? 더 이상 부끄러운 이름으로 남지 않도록, 적어도 우리 개개인에게는 이 말이 자랑스런 말이 되도록 살자. 안디옥에서 비로소 이렇게 불렸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백성들에게 칭송받았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

11. 교회의 성장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이 사람의 역할을 무시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안디옥 교회의 성장에 바나바라는 지도자가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말하고 있는 단어를 하나만 찾아보자.

    이에(24); 바나바가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에라는 뜻이다. 좋은 지도자가 있어야 하나님의 선물도 있는 것이다. 좋은 교인보다는 좋은 지도자가 더 중요하다. 사실은 이렇지만 지도자는 이렇게 생각하고 교인들은 교인들이 좋아야 교회가 성장한다고 생각한다면 좋긴 한데. 부족한 지도자를 비난하기 위한 구절로 이용되지 않도록 주의하자.

12. '그리스도인'을 네 글자로 줄이면 크리스챤이 된다. 두 글자(두 음절)로 줄이면 Christian이다. 세 글자로 줄이면?

    기독인; 그리스도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기독(基督)이다.

13. 이방인들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셨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유대인들이 결국은 이방인들도 같은 형제라고 받아들이게 된 증거가 있다면 무엇일까?

    안디옥 교회의 부조를 받아들인 것은 유대 교회와 이방인 교회를 분간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선지자; 초대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며 예언을 하기도 했던 사도 다음의 직분이었다. 영감받은 교사들인 셈이다.
    장로; 성경에 장로란 말이 많이 나오지만 신약교회의 장로라는 의미는 여기서 처음 나온다. 아마 교회의 구제 업무를 맡았던 집사를 가리키는 것 같다.
    구레네; 북아프리카 리비아의 도시
    베니게; 지금의 레바논 지역이다. 두로와 시돈이 이 지역내에 있다.
    안디옥; 신약에는 비시디아 안디옥(행13:14)과 수리아 안디옥이 나오는 데 여기서는 수리아의 안디옥이다.
    구브로; 요즈음 지도에는 키프로스(Cyprus)로 기록된 지중해 동북부에 위치한 섬으로 안디옥, 다소, 길리기아와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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