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2


1. 인생을 마음껏 즐기면 기분이 어떨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솔로몬이 누구를 대상으로 이런 시험을 했을까?

    자기: ‘내 마음에 이르기를’ 이라는 표현을 보면 자기에게 그런 말을 하고 스스로 하고 싶은 짓을 다 해 보았다는 말이다. 1장에서 만물도 허무하고, 지혜도 허무하다고 하더니 여기서는 육신의 즐거움도 허무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허무한 것인지도 모른다. 연극이 끝나고 관객이 다 돌아간 후에 느끼는 (더구나 슬픈 사연을 가진) 희극배우의 허무함이 이럴까?

2. 웃음은 암도 고칠 수 있다고 야단인데? 일부러라도 웃으라고 하던데? 이걸 함부로 미친 짓이라고 하면 되나?

    태양 아래 촛불과 같은 것? 억지로 웃는 웃음도 효력이 있단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웃음과 희락과 비교해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하나님 없이는 아무리 좋은 것도 궁극적으로 좋은 것이 아니다.

3. 무엇이 선한(=좋은) 일인지 알아보려고 자기 자신에게는 어떻게 했는가(3)?

    마음은 지혜로 다스리고, 육신은 술로 즐겁게 하면 될까 고민을 했다. 결과는 말하지 않았지만 소용이 없었겠지.

4. 무엇이 선한(좋은) 일인지 알아보려고 외부적으로는 무슨 일을 했는가(3-8)?

    사업을 크게 했다: 집을 짓고, 과수원을 만들고, 재산을 많이 늘렸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봤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엄청난 부를 누렸다(왕상 10:23, 11:3). 그렇지만 그것도 허무하더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이런 엄청난 부를 허락한 것도 바로 이 한 마디를 위함일 것이다.

5. 4-8절에 반복되는 구절이 있는가?

    나를 위하여: 개역 성경에는 이 표현이 4번 반복되지만 영역본은 천차만별이다. NIV는 2번, NASB는 6번, NKJV는 5번 나온다. 원어에는 8번이다(4절에 2번, 5절에 1번, 6절에 1번, 7절에 2번, 8절에 2번). 가령, 4절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나를 위하여 포도원을 일구며...’ 하는 식이다. 번역본마다 이렇게 횟수를 달리한 것은 ‘나를 위하여’라는 표현이 과도하게 반복된다는 의미다. 저자가 그런 의도로 그렇게 반복한 것은 번역본들도 그 느낌을 살려야 할텐데...(이 표현이 영어로는 3음절(for myself)이나 2음절(myself), 우리말로는 5음절, 원어는 1음절이니 이런 차이도 감안하지 않았을까?) 나를 위하여 행한 일이 결과적으로 그렇게 허무하더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일 것이다.

6. 일찍, 순식간에 엄청난 부를 쌓은 사람들(유명 배우, 복권 당첨자)은 말년이 불행한 경우가 많다. 솔로몬은 이런 사람들과 비교하면 아주 행복한 셈이다. 왜 그런가?

    그 많은 부를 관리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으니(9): 지혜가 없으면 아무리 많은 재물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많은 부와 지혜를 동시에 가졌으니 그나마 자기 시대에는 제대로 누리고 즐겼다(10). 이런 것을 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허무한 것이 아니라 이런 것을 다 누리고 즐겼지만 허무하더라는 것이다. 차원이 다른 허무함이다.

7. 솔로몬은 자신이 겪은 일을 돌아보면서 다른 사람을 걱정한다. 자기의 뒤를 이은 왕들이 염려스러운 이유가 무엇인가?

    자기와 동일한 과정(=이미 행한 지 오래 전의 일)을 밟을 것이기 때문: 자기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내가 이 모양인데 다른 왕들이 또 그런 욕심을 부리겠지만 결국은 같은 결론에 이를 것이니 걱정이 되는 것이다. 왕으로서 나라를 위한 걱정이 아니다. 인생의 문제를 염려하는 것이다.

8.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13) 지혜가 유익이 없다니(15)?

    큰 차이가 없다는 것(오십보 백보), 혹은 아무리 지혜로워도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것(=죽음으로 모든 것이 잊혀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 우리는 원숭이가 손이 자라지 않는 곳의 바나나를 막대기를 이용해서 따 먹는 것을 보고 대단하다고 감탄을 한다. 아주 영리한 놈이라고! 다른 짐승과 비교해보면 대단히 영리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IQ가 두 자리 숫자 밖에 안 되는 인간이라도 그렇게 영리한 원숭이에 비교하면 천재 중의 천재다.

    마찬가지로, 사람들 중에는 IQ 140이니, 200이니 하고 자랑한다. 대단한 두뇌인가? 사람끼리에는 그렇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막대기를 이용해서 바나나를 따먹는 원숭이의 지혜로움보다 못할 지도 모른다. 이걸 깨닫고 보면 지혜자나 우매자나 구별하는 것이 헛된 일이라는 것이 자명하다. 솔로몬이 이런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만으르도 그가 대단히 지혜로운 사람이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9. 자신이 행한 모든 수고를 왜 미워하는가?

    자신이 다 누리지 못하고 넘겨주어야 하기 때문(18, 21): 지나친 욕심 아닌가? 자기가 번 돈을 자기가 다 써야 하는가? 이기적인 욕심일 수도 있지만 성경은 자신의 수고에 대한 열매를 자신이 누리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라고 한다(신 20:6 ↔ 28:30). 개인적인 욕심이라기보다는 현세에 국한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절망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영원함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게 틀림없다(사 65:21-23).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일에 이런 식으로 허무함을 느끼지는 않을텐데...

10. 자기의 뒤를 이을 자가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 아무도 모른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어느 쪽인가?

    우매자: 르호보암 말이다. 어리석은 짓을 해서 나라를 둘로 쪼개지게 해버렸다. 솔로몬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을 했다. 아니, 예상을 너무 잘 했나?

11. 모든 것이 다 허무하다고 하던 사람이 갑자기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이 없다’니(24)?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라야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겨우 먹고 마시는 것을 기쁨이라고 하는가? 좀 더 의미있는 삶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나님의 손에 잡혀 사는 사람에게는 일상적인 삶도 귀중한 것이다. 일상적인 일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누리며 즐거워해야 한다.

12.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셔서 모아 쌓게 하신다. 누구를 위하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시려고: 말이 되나? 그리스도인들은 힘들고 어렵게 아껴 절약해야 하는데 믿지 않는 자들은 자기 마음대로 펑펑 쓰며 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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