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1장 |
24절: 본 단락은 갈대아 땅(바벨론) 그발 강가에 살고 있는 선지자가 환상 중에서 본 예루살렘의 죄악과 그 성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환상이다. 2. 여기 25인은 8:16절의 25인과 다른 사람인가? 다르다면 어떤 점이 다른가? 다르다: 우선 이들이 서 있는 위치가 다르다. 전자는 ‘여호와의 전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예컨데 현관) 우상을 섬겼으니 제사장 계열이고, 후자는 ‘여호와의 전 동문’에(예컨데 대문간) 서 있는 방백들이니 행정관료다. 종교지도자나 사회지도자나 할 것 없이 다 불의하고 악한 것이 유다를 완전히 무너지게 만든 최종 원인이다. 3. 하나님께서 악하다고 말씀하시는데(2절 = 심판이 임박했다는 뜻) 정작 심판의 대상인 백성들은 뭐라고 하는가? 문맥상으로 본다면 그게 무슨 뜻인가? 집 건축할 때가 가깝지 아니한즉 이 성읍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3): 문맥상으로는(4절도 참고) 이 말이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의 뜻을 지녔으니 ‘평안하다, 심판이 없다’는 뜻이다. 어떻게 그런 뜻이 되지? 4. 여호와의 신이 선지자에게 임하였다고 한다(5). 부러운가? 특별한 사정, 정말 다급한 경우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셨다. 하나님께서 선조들에게(특히, 아브라함이나 야곱, 사사들, 엘리야) 나타나신 경우는 대부분이 어려움에 처한 때이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신 경우도 거의 그렇다. 특별한 은혜를 주어야만 해결이 될만큼 사정이 급한 경우에 처해있는 것이 부러운가? 평온한 때에 평소에 주신 은혜를 누리며 최선을 다할 것인가? 여호와의 신이 함께 하는 것만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는 선지자의 형편도 살펴볼 일이다. 5. 이스라엘이 살륙을 했다고(6절)? 살인을 했다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지만 이스라엘이 살륙을 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실제적인 살륙을 뜻하기보다는 정신적인 살인을 말함같다. 지도자들이 백성을 압제한 것에 대한 비유로 보는 것이 좋은 이유를 문맥에서 찾아보자. 5절을 보면 마음의 악함을 책망하고, 7절의 언급도 상징적인 의미임이 분명하다. 반면에 지도자들의 그릇된 자신감으로 전쟁을 불러일으켜 결국은 많은 유대인들이 살륙을 당한 것을 가리킨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6. 가마 속의 고기는 안전한 것으로 생각하는 백성들의 생각이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쨓든 그런 의미로 쓰이고 있는데 징계하시는 하나님은 ‘너희는 가마 속의 고기가 아니라’고 하신다. 그럼 어떤 고기? 끄집어 낸 고기: 가마 속의 고기나 미리 끄집어 낸 고기나 그게 그것이지 싶은데...? 결코 안전할 수 없는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예루살렘이 안전한 곳이라고 믿는 자들에게 ‘그래 가마 속에 있으면 안전하지’라고 말하는 것 아닐까? 본래 예루살렘은 높은 산 꼭대기에 세워진 난공불락의 요새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하시면 아무리 튼튼한 성이라도 별 수 없다. 7. 하나님께서 징계하실 때에는 다양한 방법이 사용되었다. 추방, 땅이 저주받는 것, 물, 언어의 혼란, 질병, 뱀, 이방인의 침입, 버려두는 것... 이제 이스라엘이 가장 두려워하는 ‘칼’이 임하게 하시겠단다. 칼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방인의 침입(=9절의 ‘타국인의 손’): 하나님을 두려워했더라면 하나님께서 임하셨을텐데 엉뚱하게 칼을 두려워하다니? 변경에서 국문하시겠다는 말은 적국으로 끌려갈 것이라는 뜻이다(레 26:27-39, 신 28:63-65). 변경에서 이들을 기다리는 이는 적국의 왕이다(렘 39:5). 이방인이 침입하고, 이방의 왕이 심문을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데(10), 아니 이런 일을 겪기 전에 하나님을 알았더라면... 8. 여호와를 여호와인 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뜻인가?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지키는 것(12): 이방인의 규례대로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전혀 모른다는 뜻이다. 성전을 가지고 있고 제사를 드린다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그 분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그 분을 아는 것이다. 9. 에스겔이 환상 중에서(8:3-11:24)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가 죽는 것을 보았다. 백성의 방백으로서 불의한 일에 앞장 선 사람이다(1). 죽어 마땅한 사람 아닌가? 이 사람의 죽음을 보고 선지자가 큰 소리로 부르짖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심판이 실제로 시작되었기 때문: 남은 자를 위해서 중보기도를 하는 것이 선지자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하려는 하나님께 그러시지 말라고 매어달리는 모세처럼(출 32:11-13)! 10. 15-21을 보면서 이스라엘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보자. 예루살렘 거민과 열방에 흩어진 자: 15절의 ‘너의 형제 곧 너의 형제와 친속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16절의 ‘열방에 흩어진 자’를 가리킨다. 아직은 예루살렘이 완전히 망하기 전이다. 11. 예루살렘 거민들이 포로로 잡혀간 자들을 향해서 무엇이라고 하는가? 여호와에게서 멀리 떠나라 이 땅은 우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신 것이라(15): 너희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자들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받은 자라는 뜻이다. 포로로 잡혀간 자들에 대해서 연대책임을 느껴야 했었다. 자신들이 의롭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기는 불가능하다. 인간이 어째 이렇까? 그만큼 두들겨 맞으면 정신이 들만도 한데... 12. 이방인 가운데로 쫓겨난 자들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하시는가(16-20)?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20): 애굽에서 불러내셔서 하셨던 말씀이다(출 20:2). 배신하고 징계를 받는 상황이지만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하셨던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신다. 포로로 가서 절망 가운데 빠져 있을 수 있는 백성들에게 큰 위로가 되는 말씀이다. 에스겔의 메시지는 역사의 새로운 해석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남은 자는 복을 받았고, 포로로 잡혀간 자는 버림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선지자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13. 하나님께서 포로가 된 백성들에게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시면 좋을텐데 왜 굳이 성소가 된다고 하실까? 구약시대에는 눈에 보이는 성소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거나 교제를 나눌 수 없었던 구약 시대를 반영한 표현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성소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과 교제를 계속할 수 있다(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고 떠나신 게 아니다)는 뜻이다. 성소는 곧 하나님을 뜻한다. 14. 하나님께서 성소가 되면 영원해야지 왜 잠간이라고 하실까(16)? 바벨론에서의 포로 생활이 잠간 밖에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 70년이라고 하셨지만(렘 29:10, 대하 36:21)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여전히 잠간일 뿐이다. 15. 이스라엘 땅은 결국 누가 차지하는가? 지금 예루살렘에 거하고 있는 유대인들, 예루살렘을 점령할 이방인들, 그들에게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 하나님껫 회복시키실 하나님의 백성들: 일단은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이 가장 유력한 대상이다. 그들은 돌이켜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을 제하여 버리고(18), 하나님의 율례를 좇으며 하나님의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기 때문이다(20). 그렇지 않으면 지금 아무리 예루살렘에 거하고 있다고 해도, 예루살렘의 점령했다고 해도 결코 예루살렘의 주인이 될 수 없다. 16. 스스로 우상을 버리고(돌이켜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을 제하여 버리고) 하나님을 찾는다 해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하나님의 법을 따를 수 있다. 회개하고 돌아설 때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베푸시는가? 일치한 마음과 새 신, 부드러운 마음(19): 예전에는(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셨는데? 이스라엘은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데에 실패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은혜를 부어주시겠다는 약속이다. 믿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렇게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인간은 자신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롬 8:3). 17. 하나님께서 아무리 은혜를 쏟아부어도 끝까지 거역하는 자에게는 심판이 있다. 포로로 잡혀간 자들이 은혜를 누릴 때에도 여전히 미운 것과 가증한 것을 마음으로 좇는 자는 누구인가? 지금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들: 자신들이 예루살렘에 여전히 거하게 된 것이 자신들이 잘 나서 그런 줄로 아는 인간들이다. 18. 그룹들이 날개를 드는 것은 자동차에 시동을 거는 셈이다. 성소에서 떠나신 하나님께서 이제 어디에서 어디로 떠나시는가? 성전 동문에서 성읍 동편 산(감람산)을 거쳐 갈대아로: 선지자가 갈대아 지방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예루살렘에 거하시던 하나님께서 이런 과정을 거쳐서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간 갈대아에 오셨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집을 떠나시게 만든 고약한 자식들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