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1장


1. 2-5절을 20:46-48와 비교하면 구조는 거의 같다. 서로 짝을 이루는 것들이 무엇인가?

20:46-48

21:2-5

인자야 너는 얼굴을 남으로 향하라 남으로 향하여 소리내어 남방들의 삼림을 쳐서 예언하라

인자야 너는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향하며 성소를 향하여 소리내어 이스라엘 땅을 쳐서 예언하라

남방 삼림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의 가운데 불을 일으켜 모든 푸른 나무와 모든 마른 나무를 멸하리니 맹렬한 불꽃이 꺼지지 아니하고 남에서 북까지 모든 얼굴이 그슬릴지라

이스라엘 땅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칼을 집에서 빼어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지라

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터이므로 내 칼을 집에서 빼어 무릇 혈기 있는 자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

무릇 혈기 있는 자는 나 여호와가 그 불을 일으킨 줄을 알리니 그것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기로

무릇 혈기 있는 자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집에서 빼어 낸 줄을 알지라 칼이 다시 꽂혀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불 = 칼,
    모든 푸른 나무와 모든 마른 나무 = 의인과 악인,
    남방 삼림 = 이스라엘 땅,
    모든 나무를 사름 = 칼을 다시 꽂지 아니함: 불이 모든 나무를 사르듯 칼이 모든 사람을 칠 것이다.

2. 선지자의 얼굴이 예루살렘을 향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얼굴이 예루살렘을 향하는 것이다. 이것은 복이 아닌가?

    잘 하고 있을 때는 엄청난 복이지만 잘못할 때는 혼이 날 각오를 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지금은 매를 들고 바라보신다. 20장이 심판을 받아야 할 이유를 설명한다면 21장은 심판의 구체적인 모습을 설명하는 셈이다.

3. 악인을 끊는 것이야 그렇다고 하지만 의인은 왜? 18:1-4를 참고해서 생각해보자.

    의인 때문에 심판이 미루어지기는 하지만 악인 때문에 끝내 심판이 임하게 되면 외형상으로는 의인도 함께 심판을 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꺼번에 심판이 임하지만 의인은 자기 죄로만 죽을 것이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18:1-4). 외형상 같아보여도 의인의 죽음은 악인의 죽음과 다르다.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는 갈림길이다.

4. 혈기만 없으면(?) 하나님의 칼을 피할 수 있는가(4, 5)?

    피할 수 없다: 우리 말의 ‘혈기’는 두 가지 의미, 즉 성질이라는 의미와 육체라는 의미가 있다. 여기서는 육체를 가진 자, 즉 모든 자를 가리킨다.

5. 선지자는 연기를 잘 해야 했던 모양이다(6). 허리가 끊어지는 듯이 울라고? 무척 힘들었겠다. 멀쩡한 선지자를 보고 왜 울라고 하시는가?

    사람들이 물으면 ‘재앙에 대한 말씀’을 선포하라고: 바벨론의 3차 침입에 대한 소문이다. 결국 이 일로 유다가 완전히 망하게 된다고 외치라는 말이다.

6. 칼이 살육하는 자의 손에 딱 맞도록 날카롭고도 마광되었다는 것(9-11)을 한 마디로 하면?

    준비가 끝났다: 이제 휘두르기만 하면 된다. 심판하실 준비가 완료되었으니 심판받을 우리는 즐거워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모든 다른 나무(나라)를 업신여기다니! 그런 뜻인가? 10절 후반부는 모르겠다.

7. 백성과 방백에게 칼이 임하니 슬피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왜 넓적다리를 치라고 할까(12)? 우리와 표현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식으로 한다면 넓적다리 대신 어느 부위가 가장 좋을까?

    가슴: 넓적다리(=렘 31:19의 ‘볼기’)를 치는 것은 몹시 슬퍼하는 행위이다.

8. 장사꾼이 손뼉을 치며 소리를 지르는 것은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함이다. 선지자가 손뼉을 치고 칼을 거푸 휘두르는 것은 무슨 목적인가?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는 예언 행위이다. 밀실에서 대인(=아마도 유다의 왕)을 중상케 하는 칼이라면 다른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9. ‘칼아 모이라 우향하라 항오를 차리라 좌향하라 향한 대로 가라’ 이게 무슨 장면인가?

    칼을 군인으로 의인화한 표현: 군인들이 대오를 이루어 행군하고 싸우듯이 칼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처럼 표현하였다.

10. 선지자는 또 이상한 짓을 해야 한다. 땅에다 길을 그린다. 바벨론 왕의 진로다. 얼마쯤 그리다가 갈라지도록 그린다. 표지판을 세운다. 한쪽은 암몬이고, 또 한 쪽은 예루살렘이다. 그런 다음에는 뭘 하지?

    전쟁 놀이: 바벨론 왕이 하게 될 전투의 흉내를 계속해야 했다. 화살을 흔들거나, 짐승의 간을 보고 점을 쳐서,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놀이를 계속해야 한다(4장에서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주목을 끌어서 결국은 끔찍한 심판을 선포해야 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11. 바벨론 왕이 점을 쳐서 공격할 대상으로 예루살렘을 찍었다. 예루살렘 거민들은 바벨론 왕의 이 점괘를 헛점(엉터리 점)으로 여겼다. 점이야 믿을 것이 못되니 당연한 것 아닌가?

    바벨론 왕의 점괘를 안 믿는 것은 좋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 더 문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아무런 효능도 없는 바벨론 왕의 점괘가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것도 아주 끔찍하게! 사주팔자, 궁합, 각종 악연이 아무 것도 아니려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한다.

12. 이스라엘 왕을 치는 분이 바벨론 왕인가, 하나님이신가?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을 들어: 바벨론 왕은 이스라엘이 맹약을 어겼기 때문에 쳐들어온다. 한 놈을 잡아서 본 때를 보여야겠는데 어느 놈을 칠까 하다가 점괘에 따라 이스라엘을 친다. 그런데 이런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이스라엘의 악, 건과, 죄를 기억하시는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의 손의 빌어 이스라엘을 치는 것이다.

13. 암몬 족속은 바벨론 왕의 점괘에 따라 침략을 면한 것 같은데... 아닌가?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완전히 망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암몬에게(25:3) 하나님께서 별도의 심판을 행하실 것이라는 선언이다. 암몬은 유다가 망한 5년 뒤에 멸망했다(BC 586).

14. 암몬 족속을 ‘중상을 당한 악인의 목 위에 두면’(29) 어떻게 되나?

    같은 처지가 되겠지: 유다의 멸망을 보고 좋아라 했으니 같은 꼴을 당하게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심판이겠다.

15. 암몬 족속에 대한 심판이 유다와 비교해서 어떤 점이 다른가?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죽임을 당함(30), 회복되지 아니함(32): 유다도 같은 운명이어야 할 터인데 유다는 다시 돌아야 나라를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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