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장 |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대비되는 연약한 인생을 의미함: 연약한 인생을 불러 일을 맡기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훗날 이 말이 전능하신 자리에서 연약한 인생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된다. 2. ‘일어서라’고 해놓고 일으켜 세우시면 이상하잖아? 하라고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면 그 일이 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발령자의 의무라고 하던가? 공부하라고 시킨 부모는 공부하는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챙겨주는 법이다. 하나님의 일은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하게하셔야 가능한 일이다(신 8:18). 3. 하나님의 말씀을 엎드려서(1:28) 들으면 안되나? 엎드린 자세는 경배하는 자세다. 그렇게 말씀을 듣는 것이 옳다. 그런데도 일어서라는 것은 경배만 하고 있어서 될 일이 아니라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뜻이 강하다. 일어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기 위한 자세다. 4.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거듭되는 침공을 이기지 못하고 두 차례에 걸쳐서 포로로 잡혀왔다(아직은 3차 포로가 오기 전이다).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되었다. 그쯤되면 회개하고 돌아서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그럴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것이 인간인가 보다(3): 이스라엘은 여전히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하단다. 그래도 버리지 않고 또 선지자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떨까? 왜 이렇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시는가? 죽이지도 못하고 살리지도 못하는 부자간의 아픔보다 훨씬 더 해 보인다. 애초에 인간을 그렇게 만드신 것이 화근(?)이다.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사랑에 눈먼 하나님’이란 제목의 설교를 참고 하세요. 5. 에스겔이 말씀을 전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참고로 1:1절의 여호야긴 왕은 유다 왕이다. 그러므로 사로잡힌 자들은 유다 사람들이다. 이스라엘 자손(3): 더 이상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를 구분하지 않는다. 북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다보다 적어도 130여년이나 먼저(BC 722 ↔ BC 605, 597) 망해서 흩어져 버렸다. 그들과 여기에 포로로 잡혀온 유다 백성들과 아직 포로로 잡히지 않고 유다 땅에 살고 있는 백성들까지 다 포함해서 이스라엘이라고 하신다. 징계로 인하여 흩어진 모든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다 포함하는 말이다. 6. 지금 에스겔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목표는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가 아닌 모양이다. 그럴 가능성이 없으니 그러시는지는 몰라도... 에스겔을 보내시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하시는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 알게 하는 것(5): 경고도 않고 징계를 했다고 말하지는 말라는 일종의 공갈(?)이다. 에스겔이 선지자였음을 알게된다는 것은 그가 한 말이 다 이루어진다는 의미다(신 18:22). 7. 어떤 전도자들이 흔히 잘 애용하는 말씀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이다(5, 7). 이 말씀이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무조건 전하기만 하라는 말씀인가? 아니다. 이것은 전도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경고다: 이 말씀은 전도의 문맥이 아니다. 전도는 초청이다. 지혜롭게 초청해야지 억지로 끌어다 앉히려고 해서는 안된다.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한다(마 28:20). 바울이 에베소에서 2년간 날마다 말씀을 가르친 것(행 19:9)이나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말씀을 자세히 풀어주신 것처럼(눅 24:27) 상대방을 배려해야 한다. 8. 두려워말라고 한다고 안 두렵나? 말씀을 먹는 것(8)이 유일한 해답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스스로 낸 용기는 얼마 가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에 의지하지 않고 두려움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는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 9. 하나님께서 부르셨을 때 가장 말이 많았던 사람이 아마 모세, 그 다음이 기드온 아닐까? 예레미야나 이사야도 한 마디 할 수 있었는데 에스겔은? 한 마디 대꾸할 겨를도 없이 사명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그만큼 다급한 탓일 것이다. 10. 임금의 사신으로 적국을 향하는 신하는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도 무엇을 각오해야 하는가? 가시, 찔레, 전갈(6): 목사가 되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만큼 교회가 부패하고 있는 증거란다. 목사가 되는 것이 출세하는 것으로 인식이 되고 있기 때문이란다. 목사가 되는 것이 가시와 찔레와 전갈의 고통을 당하는 것이라면 지원자가 그리 많지 않을텐데... 아니 그런 아픔을 각오하고라도 목사가 되겠다는 지원자가 많아진다면 그야먈로 교회의 전성기가 될텐데... 11. 듣든지 아니 듣든지 간에 선지자가 고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 말(27) = 하나님의 말씀: 선지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말로 바꾸어서는 안된다. 인간의 냄새가 나는 말을 전해서는 안된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본심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자신의 말을 해서는 안된다. 12. 두루마리는 안쪽에만 글을 쓰는 법인데 왜 안팎으로 쓰여졌을까? 두루마리를 아끼려고? 하나님께서 하실 말씀이 많다는 의미: 한 마디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께서 얼마나 아프셨으면 이렇게 하실 말씀이 많으실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