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40장


1. ‘사로잡힌 해’와 ‘성이 함락된 해’ 사이에는 11년의 간격이 있다. 이 11년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자.

    바벨론의 2차 침공(BC 597)과 3차 침공(BC 586)의 간격, 즉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의 시대: 에스겔은 바벨론의 2차 침공 때 사로잡혀 왔다. 그후 11년 동안 시드기야가 비록 속국의 왕이나 마찬가지이긴 했지만 그래도 유다의 왕으로 건재했다. 백성의 일부는 포로로 잡혀가고 남은 백성들을 다스리는 판에도 선지자를 통해서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다가 결국은 망하고 말았다. 에스겔이 소명을 받은지도 벌써 20년 째이다.

2. 이스라엘 땅에 극히 높은 산이 있나?

    예루살렘이 있던 시온 산을 가리키는 말이다. 페허로 변해버린 예루살렘을 가리켜 극히 높은 산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렇게 회복될 것에 대한 비유다(사 2:2-3).

3. 성읍이면 성읍이지 성읍 형상같은 것은 또 뭐야?

    현재는 완전히 폐허가 된 곳이기 때문에 하는 말: 장차 선명하게 드러날 날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흐릿하게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4. 놋 같이 빛난 사람은 천사일까, 하나님일까?

    굳이 분간해야 할 이유가 없다: 에스겔을 데려가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만나게 된 분이 놋같이 빛난 사람이다. 데리고 간 분과는 분명히 다른 분이신데도 ‘내가 너를 데려왔다’고 하신다(4). 결국 우리로서는 구별할 필요가 없다.

5. 삼줄은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줄자다. 삼줄과 척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뭘 하지?

    길이를 잰다: 건물을 세우는 데에 중요한 도구이다. 반면에 건물을 허물 때는 먹그릇이 요긴하다. 가위표를 그려두면 끝장이다(9장).

6.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은 보기만 하고 듣기만 하면 다 깨달을 수 있을까?

    마음으로 생각해야 한다(4): 성경을 무조건 읽기만 하는 사람도 많은데 읽으면서 생각하고 깨달아야 한다. 베드로가 같은 환상을 세번이나 보고도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했다. 예수님의 비유나 가르침도 듣는 즉시 모두가 알아들은 것이 아니다. 바로나 느부갓네살도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꾸었지만 해석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 성경도 ‘생각’이 필요한 것이다.

7. 척량하는 장대의 길이는 얼마인가?

    장이... 육척이라: 팔꿈치에서 손가락에 이르면 한 규빗(약 45cm)인데 여기에다 한 손바닥 넓이를 더한 길이의 자(53cm 정도? 왕실규빗이란다)로 육척이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것을 3.2m로 번역했다.

※ 다음 그림은 동문의 평면도이다(출처, Daniel I, Block, Ezekiel. Eerdmans). 성전 바깥 뜰의 동쪽 문에 관한 설명(6-16)에 참고하자.

8. 담의 두께가 높이와 같다면 굉장히 튼튼한 담이다. 이 집은 나중에 보면 성전을 가리킨다. 성전의 담을 이렇게 튼튼하게 세워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다시는 외부의 침입으로 무너지지 않을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세속과 거룩함을 확실하게 구분해야함을 보여준다. 성전은 세속에 물들지 않아야 한다. 성도는 세상의 물결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9. 새생전의 이야기를 동향한 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이게 정문인가 보다. 하나님께서도 이 문으로 들어오신다(43:1-2). 문통<그림의 2>이란 문지방을 가리킨다. 이 문지방의 장(+길이)은 무엇과 같은가? (참고로 6절의 문 안통이란 내부에 있는(=현관 앞에 있는) 다른 또 하나의 문지방(4)이다.)

    담(11)의 두께: 문지방의 장이 담의 두께와 같다는 것은 문지방이 담의 일부라는 말이다. 원문상으로 층계는 담 바깥에 붙어 있는 것이다.

10. 문통을 넘어서면 좌우에 문지기의 방이 있다. 문지기의 방은 전부 몇 개인가?

    6개(10절) (6): 치수는 다 같이 6×6척이다.

11. 안 문지방(4)을 넘어서면 현관(5)이 있다. 이 현관의 장은 한 장대라고 하더니(8), 또 척량하니 팔척이더란다(9). 왜 말이 다르지?

    아마도 순수하게 현관(5)은 육척이고, 문벽(9)까지 포함하면 8척이라는 뜻 아닐까?

12. 문지방의 장은 6척이라고 했는데(광은 십척) 여기서는 십 삼척이란다(11). 아무리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13. ‘방 앞의 퇴’(10)는 경계를 짓는 ‘칸막이 벽’ 혹은 ‘울타리, 난간’을 의미하는 것 같다. 높이를 말하는 것인지 방과의 거리를 뜻하는지 분명치 않다. 문간이란 문지기 방을 포함한 동문의 폭을 말한다. 이게 어떻게 이십오척이 되는가(13)?

    좌우의 문지기 방이 12척이고 문통이 10척이다(11). 나머지 3척은 문지기 방에서 조금 더 뻗어있는 지붕의 끝 부분으로 보면 되겠다. 이것은 문지기방과 뒷쪽의 벽 사이의 공간일 수도 있다. 이 넓이를 한 지붕으로 다 덮었던 모양이다. 뒷벽(12) + 문지기 방 + 문통 + 문지기 방 + 뒷벽을 가리킨다. 뒷벽에 대한 언급이 있는가?

14. 바깥 문통에서부터 안 문 현관 앞까지 오십척인데 어떻게 그렇게 되는가?

    바깥 문통 6척(6) + 문지기 방 28척(6×3, 방 사이의 공간 5×2) + 안 문통6척 + 현관 8척 + 현관 문벽 2척(2+6×3+7×2+8+5+9): 이렇게 계산하면 11번 질문의 답이 틀려진다. 모르겠다!

※ 다음 그림은 새성전의 평면도와 에스겔의 이동 과정이다(출처, Daniel I, Block, Ezekiel. Eerdmans). 43:11절까지 이 평면도를 보면서 읽어가자.

15. ‘바깥 뜰에 들어가니’(17)라는 말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성소에서 보면 바깥 뜰인데 에스겔은 바깥 문에서 들어오면서 설명을 듣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바깥 뜰은 고유명사인 셈이다.

16. 담을 끼고 30개의 방이 있었다. 그 방은 포장된 돌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본문에서 그것을 가리키는 말이 무엇인가?

    아래 박석 땅: 그림의 점선 바깥 부분이다.

17. 성전에 들어가는 문은 세 개(동, 남, 북)가 있었다. 어느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안쪽 문과 가장 가까울까?

    다 똑 같다: 모든 바깥 문에서 가장 가까운 안쪽 문까지의 거리는 동일하게 일백척(약 53m)이다. 어디로 들어가도 같은 거리에 안쪽 문이 있다.

18. 20-23절을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북문도 동문과 동일하더라. 같은 이치로 24-27절의 내용은 남문도 북문이나 동문과 동일하더라는 말이다.

19. 28-31절은 안뜰의 남문에 대한 설명이다. 바깥 문과 거의 동일하다. 다른 점이 무엇인가?

    계단의 수가 하나 더 많은 8개다(31절 ↔ 22, 26절).

    현관이 바깥 뜰로 향한 점(↔ 바깥문의 현관은 안으로 향해 있었다): 그러면 바깥 문과 안문은 서로 마주보고 있는 셈이다. 30절은 해석이 불가하단다.

20. 32-34는 안쪽 동문, 35-37은 안쪽 북문에 대한 설명인데 모두 동일하다. 결국 6개의 문이 크기나 모양이 같은 셈인데 그냥 ‘같더라’고 하지 이렇게 일일이 다시 설명하니 읽는 사람이 얼마나 힘이 들까?

    에스겔이 전해주는 말씀에 대한 감격의 유무차이다.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던 성전이 불에 타서 모든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던 그들에게 새로운 성전이 주어진다는 것은 엄청난 감격이다. 계단 하나 하나를 즈려밟고 지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는 힘드는 일이 아니라 감격을 맛보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성전에 이르는 사람은 15개의 계단을 밟고 올라야 하는데 시편의 성전에 올라가는 시도 15편이다(120-134). 한 계단 오르면서 한 편씩 부르지 않았을까?

    여호수아서에도 그런 느낌을 주는 곳이 있다. 수 12장에는 죽은 왕들의 이름만 잔뜩 기록되어 정말 재미없다. 그 부분도 즐거움으로 읽으려면 그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야 한다. 제대로 전쟁도 해본 적이 없는 그들이 맨몸으로 견고한 성을 쌓고 있는 적들과 싸워야 한다는 두려움을 상상해보자. 지면 돌아갈 곳도 없는 처지에 하나님의 도움으로 싸워 이긴 감동을 느껴면서 읽는 자에겐 엄청난 감격일 것이다. 그렇게 노력해보자. 그래도 전혀 감동이 없고 따분하면 그냥 넘어가자.

21. 안 문을 들어서면 옆에 번제물을 씻는 방이 있고, 현관 이편 저편, 입구의 이편, 저편, 번제에 쓰는 상이 있다. 그러면 도대체 상이 몇 개인가?

    12개: 39절은 현관 안쪽, 40절은 입구의 바깥 쪽, 41절은 다시 정리하는 셈이다. 그래서 희생물을 잡기 위한 8개의 상과 도구를 놓아두는 상이 4개가 더 있었다. 이것은 아마도 문 하나에 대한 설명이니까 다른 문도 동일하게 갖추어져 있었을 것이다. 어느 문으로 들어오든지 제사를 드리기에 불편함이 없더록 갖추어진 셈이다.

22. 일반적으로는 성전이란 건물에 들어서면 아름다운 장식이 많이 보인다. 에스겔의 성전 내부에 들어서면 무엇이 가장 인상적일까?

    벽의 사면에 갈고리가 걸린 것: 푸줏간에 걸려있는 갈고리와 같은 것이 사면 벽에 잔뜩 박혀있다면?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도 없다(히 9:2)는 말씀이 정말 실감나는 장면이다.

23. 성전에서 수종드는 제사장을 왜 아론의 자손이라고 하지 않고 사독의 자손이라고 할까?

    다윗시대에 두 명의 대제사장이 있었는데(아비아달과 사독) 다윗에게 끝까지 충성한 사람은 사독이었다. 그 후 사독이 혼자서 대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게 되었다. 엘리에게 하신 말씀(삼상 2장)의 성취이기도 하다(2:27). < 엘리 → 아히둡 → 아히멜렉 → 아비아달 >

24. 안쪽 문을 통과하면 또 뜰이 있다. 이 뜰 가운데에 무엇이 있는가? 성소 뜰에는 한 가지가 더 있었는데?

    제단: 성소와 비교하면 물두멍이 없다. 제물을 씻는 방이 있었으니 물두멍이 따로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25. 드디어 성전 현관에 도착했다. 성전 현관의 전체 폭이 얼마인가?

    현관의 광은 20척(실제 건물의 폭?): 문과 문벽은 16척인데 아마 전체 폭보다는 조금 좁은 말하자면 현관의 불쑥 튀어나온 부분을 가리키는 것 같다(왕상 6:3의 ‘낭실’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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