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47장 |
생명과 땅의 회복! 포로된 이스라엘이 포로된 땅에서 돌아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거하게 될 땅이 회복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노래하지만 실제로는 오래 전에 잃어버린 에덴의 회복을 선포하는 것이다. 2. 성전의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나왔다면 이 물이 어디서 발원되었을까? 성소 내부가 발원지라면 발원지는 하나님이시다. 흘러 내리더라(1)는 표현은 물이 양이 상당했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해서 바깥 동문에서 솟구쳐 나왔다(개역의 ‘스미어’라는 표현은 좀 약한 표현이다). 그렇다면 성전 내부는 물바다인 셈인데? 비유나 환상에는 비약이 있기 마련이므로 전달하려는 핵심을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세한 부분까지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3. 물이 흐르는 방향은 성전 문지방에서 동쪽이다. 제단 남편을 통과해서 바깥 동문으로 흘러나갔다. 그런데 선지자는 왜 북문으로 나가서 동문으로 갔을까? 동문으로 나가지 않고? 동문은 닫힌 채 열지 않기 때문이다(44:1-2). 4. 전에서 스미어 나온 물이 큰 강을 이루었다? 말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작은 강이 수 없이 많이 모여서 큰 강을 이루는 법인데 작은 물줄기가 흘러가면서 점점 커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에덴의 강도 그랬다. 동산 중에서(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온 작은 물줄기는 흘러가면서 점점 커지면서 강을 이룬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잘 것 없는 한 사람(사 53장) 에게서 얼마나 거대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는가?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방법이 그랬다. 5. 우리나라의 강이라면 일천척(약 500m)을 흘렀다고 물의 깊이가 몇 십 cm씩 깊어지는 일은 없다. 이스라엘은 경사가 심한 땅이라서 그럴까? 아무래도 현실적이기보다는 환상 가운데 나타나는 기적적인 현상같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순식간에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거대한 강이 되었다는 것은 무얼 상징하는 걸까?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우리는 상상도 하기 어렵다. 6. 이 강에 적당한 이름을 붙인다면? 생명수의 강: 성전의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물이 강을 이루고 바다까지 흘러가면서 황무한 땅을 기름진 땅으로 바꾼다.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물고기 심히 많아지는 것이 물이 귀한 이스라엘에서는 참으로 감동적인 그림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믿는 자에게서는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다(요 4:10, 7:38).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계 7:17). 7. 동편으로 흐른 물이 강이 되어 어디까지 흘러가는가? 사해: 동방으로 흘러 아라바에서 바다에 이르렀다. 아라바는 팔레스틴을 남북으로 가른 요단유역의 저지대(남쪽 끝은 아카바만)를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는 사해의 북쪽 요단지역으로 흘러 사해로 들어갔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죽음의 바다를 생명의 바다로 소성케 한다. 8. 바울은 이방인들의 구원을 설명하면서 본래는 돌감람나무이던 이방인들이 좋은 가지에 접붙임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롬 11:24). 접을 붙일 때는 품질이 좋은 가지를 대목에 붙이는 법인데 바울은 접붙이기의 기본도 모른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쩌랴 복음이 이렇게 역설적인 측면이 있는 것을? 부정한 손으로 예수를 만진 경우(눅 8:44)에서 보듯이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은 거꾸로, 부정한 것을 정하게 하고, 질이 낮은 것을 질 좋은 것으로 변화시킬 능력이 있다. 본문에서도 이런 현상을 찾는다면? 강물이 사해로 흘러가서 죽음의 바다를 생명의 바다로 바꾸는 것: 실제로는 요단강물이 사해로 흘러가면 생명력을 상실한다.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발원한 생명수는 가는 곳마다 죽음을 물리치고 생명을 준다. 이것이 복음의 역설이다. 9. 엔게디는 사해의 서쪽에 있는 성읍이다. 에네글라임의 정확한 위치는 잘 모르지만 문맥상으로 반대쪽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는 아마도 사해 전 지역을 가리키는 말 일 것이다. 이곳에 어부들이 그물을 치고 온갖 종류의 고기들을 잡게 될 것이다. 처음 창조때 많은 물고기들을 종류대로 창조하셨던 모습이 연상되는 것 외에 또 어떤 다른 모습이 연상되는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사람낚는 어부가 된 제자들이 온 세상 이방인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는 것. 그 뒤를 이은 제자들이 온 세상을 향해 그물을 던지는 모습!! 10. 죽음의 바다가 생명력을 회복할 때에도 소성되지 못하는 곳이 있네(11)? 왜 그럴까?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도 끝내 심판을 자초하는 무리가 있을 것: 사해 주변에는 진흙 웅덩이나 수렁이 많이 있단다. 가령 우기에 물이 넘쳐 흘러들었다가 줄어들면 이런 웅덩이의 물은 자연히 짙은 소금물이 되고 마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에도 이런 곳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은 만인이 무조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란 말씀이다. 11. 다음 구절은 계 22:1-2절이다. 본문 12절과 어떤 점이 동일한가?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12. 회복될 이스라엘의 모습이 궁극적으로 에덴의 회복이라면, 병들거나 늙거나 죽는 것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일텐데 그런 곳에서도 먹어야 하고 치료해야 할까? (2번 대답 참고)비유나 환상에서는 전달하려는 핵심을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 에덴에도 굶어죽는 사람이 있거나 병든 사람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늘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세상에 비유하려다 보니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진 세상이라는 의미이다. 13. 여호수아 시절에 지파별로 땅을 나누어 주었는데 그대로 차지하면 되지 새삼스럽게 새로 땅을 나누어주는가? 상황도 많이 달라졌고, 땅을 나누는 방법도 달라진 탓이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땅의 분배는 실제적 상황이라기보다는 비유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14. 왜 요셉에게는 두 분깃인가? 다른 지파보다 배로 주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므낫세, 에브라임)을 자신의 아들로 삼으면서(양자들인 셈) 두 아들이 각각 독립된 지파를 이룬 탓이다. 15. 이스라엘의 회복에는 땅의 회복도 절대적이다. 땅이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땅을 회복시켜 주시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약속하셨기 때문: 성경 전체의 내용도, 구원역사도 그 이유를 묻는다면 오직 한 가지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루려 하심이다. 원인이 사람의 필요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려고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16. ‘피차없이... 기업을 삼으라’는 말씀은 모두가 회사를 차리라는 말인가? 공평하게 땅을 나누라는 말이다: 성경에서 기업이란 물려받은 유산을 의미한다. 대규모 회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17. 지파별로 땅을 나눈 얘기가 아니네(15-20)! 그럼 뭐야? 전 지파가 나눌 땅의 전체, 전 국토의 동서남북 경계: 그 안에서 지파별 경계는 다음 장에서 언급된다. 18. 민 34장에는 이스라엘의 경계가 남서북동의 순으로 언급되었다. 여기서는 어떤 순서인가? 북동남서: 출발점이 반대로 된 셈인데 출애굽 시절에는 남쪽에서 올라왔고,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장면을 생각해보면 북쪽에서 내려오기 때문일 것이다. 19. 모르는 지명이 너무 많아서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사방 경계 중에서 알만한 지명을 하나씩만 찾아보자. 그러면 대략적인 그림은 그려질 것이다. 북 - 다메섹, 동 - 요단강, 남 - 가데스, 서 - 대해(지중해): 이스라엘의 최대판도와 같지만 않지만 요단강 동편을 제외한 것이라고 보면 최대판도라고 할 수 있겠다. 20. 어느 나라든 이방인에게 함부로 땅을 내주지 않는다. 이스라엘에 와서 이스라엘 사람이 된 이방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스라엘 족속과 동일하게 여겨야 한다. 그가 우거하는 그 지파의 땅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