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9장 |
천사들: 하나님의 명을 받아 인간세상을 돌보는 천사들을 가리킨다(마 18:10, 히 1:14, 계 7:1-4). 천사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 땅에 재앙을 내리기도 한다(출 12:23, 삼하 24:10-17, 왕하 19:35-37). 그 천사들이 이제는 예루살렘 백성들을 살해하는 일을 맡았다(마 13:40-42). 말 안들으면 그냥 버리면 되지, 꼭 갋아야되나? 그냥 버리는 일은 없다.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에게 중간지대는 없다. 사랑을 받아들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심판을 당하든지. 2. 에스겔에게 ‘큰 소리’로 외치신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에는 얘기하듯이 자근자근 말씀하셨는데 이제는 왜 큰 소리로 외치셨을까? 감정이 격하신 탓(?): 아이들을 야단칠 때는 웃으면 안된단다. 그러면 장난이나 놀리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란다. 매를 조금 드는 시늉만 하더라도 표정은 엄해야 한단다. 3. 2절의 ‘그 중에’라는 말은 ‘그들과 함께’라고 번역할 수도 있는 말이다. 따라서 심판을 행하는 천사의 숫자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래도 몇 명이라고 하는 게 좋을까? 계시록을 고려해서 7명: 6명이니 7명이니 해서 싸울 일은 절대로 아니다. 단지 이런 저런 가능성이 있을 때 성경의 다른 부분과 연결해서(슥 4:10, 계 15:6) 생각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더구나 성경은 7을 완전수라고 하니까(창 2:2, 3, 출 12:15, ... ) 4. 성전에 다른 문은 없나? 왜 선지자도 북문으로 들어가고(8:14) 심판하는 여섯 사람도 북향한 윗문 길로 올까? 그곳이 우상을 세운 곳,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한 곳이니 심판도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예레미야의 계시에 따르면 북방에서 외적이 쳐들어오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우상을 세운 위치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 5. 잉크를 다루면 손이나 옷에 온통 잉크를 묻히기 마련이다. 가는 베옷(=세마포)을 입고 먹 그릇을 차는 것은 옷을 버리기 쉬운데? 세마포는 순결, 거룩함을 상징하는 옷이다. 하나님의 사명을 행하는 사람은 순결하고 거룩한 사람이어야 한다. 제사장들이나 계시록의 심판을 행하는 천사들이 이런 옷을 입었다. 6. 심판을 행할 천사들이 하필이면 놋 제단 곁에 모였을까? 제단은 희생제물을 통해서 죄사함을 받던 곳이다. 길을 열어 두었음에도 그 길로 오지 않으면 제단은 더 이상 소용이 없다. 은혜의 장소가 바로 심판의 장소가 된다. 7. 에스겔은 하나님을 보았을까?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하나님의 실체를 볼 수 있는 인간은 없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인간도 없다. 볼 수도 알 수도 없으니 하나님께서 아들을 육신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내셨다. 에스겔이 본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하나님의 영광’이었다. 보았다고 말해야 하나, 보지 못했다고 말해야 하나? 보았다고 말하는 것이 옳겠다. 8. 예루살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죄로 심판이 임하는데 그 중에서 어떤 자들이 구원을 받는가?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4): 예수님의 표현을 빌리면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이다. 잘 나가는 사람들도 많았겠지만 이런 자들이 진짜 복받은 사람들이다. 예수님때문에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 말이다. 교회가 이상하게 변해갈 때 한 쪽에서 아무런 힘도 없이 고통스러워하던 성도들이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소중하게 여기신다. 9. ‘먹으로 이마에 표를 하는 것’의 원조가 있다면 무엇일까? 이런 행위가 장차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유월절에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어린 양의 피(출 12:23): 동일한 내용을 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의 인’을 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계 7:1-8). 먹이든, 인이든 어린 양의 피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 가인에게 표를 주셔서 죽임을 면케 하신 것(창 4:15)은 외견상 비슷하지만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일시적이다, 즉 영원한 죽음을 면케 하는 것(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벗어나지 못함)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르다. 10. 본래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러 있는 곳은 지성소이다. 그런데 왜 문지방(=아마도 성소의 입구)으로 납시었는가? 일단은 천사들로 하여금 명을 내리시기 위함이지만 굳이 이렇게 나오시지 않아도 하실 수 있다. 아마도 안방에서 나오셔서 말씀하시고 떠나시기 위함인 것 같다(8:6, 10:18). 11. 심판이 시작되면 심판하는 천사들의 눈에는 늙은 자와 젊은 자, (남자와 여자),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가 구별이 되지 않는다. 무엇만 구분이 되는가? 이마에 표가 있는지 없는지: 애굽을 치던 천사의 눈에는 어린 양의 피가 있는지 없는지만 구별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행 4:12). 12. 장차 불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가 온다던데(벧후 3:7, 12, 계 18:8) 혹시 성도들도 그 불에 타죽는 일은 없을까?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성도들을 보호하는 일을 다 하신 후에 이루어진다(5절, 그 뒤를 좇아): 성도들을 보호하는 먹그릇을 든 천사보다 심판하는 천사가 절대로 앞서지 못한다. 13. 심판은 성소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면 누가 제일 먼저 심판의 대상이 되는가? 성전 앞 늙은이(6): 성전에서 우상을 섬기던 자들(8:16)을 가리키는 말인데 장로들과 제사장을 포함하는 말이다. 심판이 시작되면 가장 가까운데서, 마땅히 하나님을 잘 섬겼어야 했을 자들이 먼저 심판의 대상이 된다. 하나님을 잘 안다고? 오래 동안 교회를 다녔다고? 목사, 장로라고? 큰 복이다. 그러나 구원이 대상이 아닌 심판의 대상이라면 제일 먼저 심판을 당하게 된다(벧전 4:17).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망하기 전에 엘리 제사장의 집안이 먼저 망한 것처럼! 14. 시체에 가까이 하는 것은 부정한 일이다(민 19:11). 그런데 성전을 시체로 채우라고? 하나님께서 성전을 완전히 버리셨다는 뜻이다: 대제사장은 부모의 시체에도 가까이 말라고 하셨는데(레 21:11), 성전을 시체로 채우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전을 완전히 떠났을 뿐 아니라 뒤도 돌아보기 싫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15.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부르짖고 기도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픔을 나누어가지는 것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애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안식을 누릴 때에야 비로소 애통함이 사라지는 것이 하나님께 은총을 받은 사람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면서 선지자, 제사장, 목사, 장로, 집사, 권사... 노릇 제대로 하기는 불가능하다. 롯의 구원위한 아브라함의 기도(창 18:23-33), 민족을 위한 모세의 기도(출 32:11-14, 31-35), 다니엘의 기도(단 9:3-19), 그리스도의 기도(롬 8:34), 교인들을 위한 사도 바울의 기도(롬 1:9, 엡 1:16-19). 16.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이 이렇게 죽임을 당하는 이유는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이 가득 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판을 당하는 자들은 그 이유를 잘 모른다. 단지 하는 말이...?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보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다: 애굽이 그렇게 철저하게 재앙을 당하게 된 원인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가장 큰 불행이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모르는 것도 참 불행이다. 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부모의 마음을 모르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