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4장


1. 1-7절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나온다. 여러분은 다음 중에서 어떤 사람인가?

[유업을 이을 자, 종과 다름없는 자, 모든 것의 주인,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는 자,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는 자, 율법 아래 있는 자, 아들의 명분을 얻은 자, 아들]

    아들(=모든 것의 주인, 아들의 명분을 얻은 자): 아들이면 유업을 이을 자요, 모든 것의 주인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셔서 너희를 이렇게 만들었는데 왜 세상 초등 학문(율법) 아래 있는 자가 되려고 하는가? 엄청난 퇴보, 퇴행이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후계자,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인가? 아무리 못나도 그러하다. 우리의 삶이 우리의 신분에 맞는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2.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양자가) 된 것은 누구 덕분인가? 본문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찾는다면?

    아버지의 정한 때(2)에 아들을 보내사 속량하시고 아들의 명분을 주셨다(4): 때를 정한 것도 하나님이시고, 방법을 택하신 것도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그저 어려서 율법에 매여 있거나, 유치한 세상 초등학문에 매여 있었을 뿐이다.

3.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을 책망하는 이유는 이들의 어떤 어리석음 때문인가?

    유업을 받을 아들의 지위를 포기하고 스스로 다시 종이 되려함:

4. 복음을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성도가 율법에 복종하는 것은 마치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는 어린 상속자와 같다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란 뜻인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란 뜻은 아니고, 상속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누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5.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기 위함이다(4-5). 이것을 요즈음 많이 쓰이는 교육적 용어를 빌린다면?

    눈높이 교육! 높고 높은 하늘 보좌에서 낮고 낮은 우리의 자리까지 내려 오셔서 우리에게 눈높이를 맞추셨다. 선생님께서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도 감사한 일이거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눈높이를 맞추셨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여자에게 나셨다는 말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셨다는 뜻이다.

6. 우리가 아들이라면 우리 속에 그 아들(예수)의 영이 있어야 한다. 아들의 영이 무슨 일을 하는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는 것: 아이가 아버지를 친근하게 아빠라고 부르듯 믿음으로 얻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그러하다는 말이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생각은 했으나(출 4:22, 사 63:16) 감히 부르지는 못했다.

7. 갈라디아 성도들이 다시 율법의 종이 되어버린다면 누구의 수고가 헛일이 되는가?

    바울(11), 예수, 하나님(4-6): 그 때는 몰라서 그랬다고 치자. 이제는 다 알면서 다시 종노릇 하려느냐? 아들의 자리를 버리고 종이 되려고?

8. 예수 그리스도는 ‘때가 차매’ 이 땅에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가장 적절한 때였다고 말할 수 있는 역사적 정황은(이유)는 무엇인가?

    로마 제국의 확립(도로망, 치안, 세계적으로 복음이 확산될 수 있었음), 언어의 통일(헬라어가 세계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었고, 70인역이 이미 번역되어 있었다). 유대인들의 메시야 대망: 복음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때, 복음이 온 세상이 가장 빠르게 전파될 준비가 되었을 때에 탄생하셨다.

9.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킨다니? 예를 들면?

    금식일, 안식일(날), 월삭(달),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수전절, 부림절(절기), 안식년, 희년(해): 이런 절기를 지킨다고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절기를 지키는 것이 구원의 방편인 것처럼 생각하는 그릇된 태도를 책망하는 것이다.

10. 몹시 화가 난 부모도 한참 고함을 지르다보면 좀 수그러들면서 사정하기 시작한다. 거칠었던 바울의 목소리가 어디서부터 잦아들면서 사정조로 바뀌고 있는가?

    11절 부터: 10절 다음에 또 크게 야단을 쳐야 하는데 화살이 자기를 향하고 있다. 12절부터 다시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면서 서로의 관계를 되살펴보면서 사정조로 이야기를 계속 한다.

11. 여태까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이성적으로 진리를 설명하던 바울이 이제는 감성에 호소한다(12-20). 과거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면서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 되돌아보라면서 감성을 자극한다. 대강 내용을 쉽게 풀이한다면 다음과 같이 고쳐 쓸 수도 있겠다. 어느 구절을 그렇게 고쳐 썼는지 ()에 관계된 절수를 넣어보자.

    (13-15) ‘내가 어려울 때 너희가 내게 얼마나 잘 해주었느냐? 우리 사이가 눈이라도 빼줄 그런 사이 아니었느냐?
    (16) 그런데 내가 이렇게 꾸중을 했다고 원수지간이 되겠느냐?
    (18) 쟤들이 열심내는 것은 너희와 나 사이를 이간질해서 득을 보려는 거야. 정말 좋은 뜻으로 그런다면 나는 아무런 상관도 않겠다.
    (19-20) 너희들의 일로 인해서 몹시 당황스럽구나. 지금이라도 다정한 목소리로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도록 가르치고 싶구나! 나는 지금 해산하는 여인처럼 괴롭구나!’

12. 바울의 말이 효과가 있었다면 ‘진실에 입각한 간절한 간청’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다가 12절은 무엇이라고 하면 좋을까?

    솔선수범(모범): 감히 나와 같이 되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지 않았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 무슨 모범을 보였을까? 아마도 율법에 구속당한 종의 모습이 아니라 율법을 초월한 믿음으로 사는 자의 삶을 염두에 둔 것 아닐까?

13.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는 말(20c)은 ‘너희의 일에 대해서 당황스럽다, 혹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음성을 어떻게 변하려고 하는 걸까?

    부드럽고 다정스럽게: 처음부터 지금까지 강하고 단호하게 말했으니.

14.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갈라디아 성도들이 다시 율법으로 되돌아가기를 극구 말리는 바울의 간절한 소망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 중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화를 가리키는 말이다.

15. 하가(=하갈)는 아들을 낳았으나 결국은 쫓겨날 운명이었다. 이 하가의 일생이 무엇을 가리키는가?

    시내산, 곧 율법

16.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난 사람(조선시대의 표현을 빌리면 정실부인에게서 난 적자)과 계집종에게서 난 사람(첩에게서 난 서출)이다.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난 사람은 약속으로 말미암은 사람이고 계집종에게서 난 사람은 육체를 따라 난 사람이다. 그러면 여기서 계집종에게서 난 사람이란 누구를 가리키는가?

    유대인들: 율법 아래 있는 자들

17. 예루살렘도 두 개가 있다.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각각 무엇을 가리키는가?

    지금 있는 예루살렘: 지리적인 장소 곧 유대인
    위에 있는 예루살렘: 약속에 의한 장소, 그리스도인, 믿는 이방인

18. 홀로 사는 자라는 말은 남편이 없는 여자라는 말이다. 그래서 잉태치도 구로치도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남편있는 자보다 더 자녀가 많을 수 있는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육체의 형편을 고려해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바로 이런 기적이다.

19. 약속의 자녀인 이삭의 후손 유대인을 어떻게 ‘육체를 따라 난 자’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약속을 따라난 자의 후손은 여전히 약속을 따라서 되는 것이지 또 다시 육체로(혈통으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20. 믿음과 율법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바울이 동원하고 있는 다양한 비유들을 찾아보자.

    종과 아들, 어린 주인과 후견인, 적자와 서출, 하갈과 사라, 땅의 예루살렘과 위에 있는 예루살렘, 홀로 사는 여자와 남편있는 여자, 약속과 육체: 믿음과 율법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일반인들이 쉽게 아는 비유를 들어서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가르치는 자의 특별한 은사이다. 멋지게 설명했다.

21. 다음 구절에서 (    )앞에 있는 밑줄친 말은 어떤 사람에 대한 비유인가?

(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 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23) 계집 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25)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 ① )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 ② )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 기록된바 잉태치 못한 자( ③ )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 ④ )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 ⑤ )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 ⑥ )가 성령을 따라 난 자( ⑦ )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 종과 그 아들( ⑧ )을 내어 쫓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 ⑨ )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3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① 지리적인 장소 곧 유대인
    ② 약속에 의한 장소, 그리스도인, 믿는 이방인
    ③ 그리스도인, 즉 믿는 이방인
    ④ 그리스도인, 즉 믿는 이방인
    ⑤ 유대인
    ⑥ 이스마엘, 유대인
    ⑦ 이삭, 그리스도인
    ⑧ 이스마엘, 즉 유대인
    ⑨ 이삭,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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