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5 장


1. 울음 소리가 얼마나 컸으면 바로의 궁궐에서도 들렸을까?

    소리가 컸다는 뜻이 아니라, 하도 심하게 우니 보고가 들어갔다는 뜻;
    우는 것까지 시시콜콜하게 다 보고하는가? 애굽인들이 보기에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2. 그 동안 울음을 참을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애굽인 시종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물리치고 난 후에야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이란 것도 누군가가 계기를 만들어 주어야 제대로 터진다. 울고 싶은데 빰 맞은 격이라는 속담이 바로 그것이다. 반대로 그런 계기가 전혀 없으면 끝까지 울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럴 수도 있다; 울음이 터지기 전까지는 스스로 그렇게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터지고 나면 스스로 조절이 되지 않는다. 이런 유형의 것이 우리 삶에 더러 있으므로 그 시기를 잘 조절할 필요가 있다. 가령, 사랑고백이 그렇다. 속에 묻어 두고 있을 때는 내가 주인이 되어 속도를 조절할 수 있지만 일단 뱉어버리면 더 이상 내가 주인이 되지 못하고 그 말에 끌려다니게 된다. 감정, 말, 자존심과 관련되어 이런 현상이 많이 발생한다.

3. 형님들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는?

    나는 요셉이라. 나는 당신들의 동생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아마 첫 번째 말이 마른 하늘의 벼락같은 소리이었을 것이다. 바로 이 때 요셉의 말이 히브리말로 바뀌면서 '나는 요셉이라' 했을 것이며 이 짧은 한 마디는 벼락보다 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4. 요셉의 방성대곡은 그가 국무총리의 자리에서 야곱의 11번째 아들로 돌아갔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 노인'이 변하여 (            )가 된다.

    내 아버지

5. 요셉이 어느 때에 하나님의 섭리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는 지는 분명치 않으나 이 때까지 겪은 말할 수 없는 고초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라는 확신을 보여 줌과 동시에 형님들의 죄를 전혀 죄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요셉의 말은 무엇이며 언제 형님들을 전부 용서할 마음이 생겼을까?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하나님이시라(8); 형님들이 나를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라는 고백.
    베냐민을 살리기 위하여 형들이 한마음으로 뭉친 것을 확인했을 때 (베냐민만 데려오라고 했음에도 형들이 줄줄이 따라온 것과 유다의 설명을 들으면서); 요셉이 정작 궁금했던 것은 아버지와 베냐민의 안부였을 것이다. 그것을 알아보려고 이런 저런 일을 벌렸는데 결과적으로 형들의 변화(형제애, 회개함)를 확인케 되었다.

6.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하나님이시라. 이 말에 따르면 형님들이 동생을 팔아버린 것이 전혀 죄가 아닌가?

    형님들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일을 이렇게 만드신 것일 뿐 형님들의 죄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요셉의 입장에서 형님들을 모두 용서하겠다는 말이다. 형님들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게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고 부수적이지만 형들의 변화 때문이다.

7. 요셉이 자신을 가리켜 '바로의 아비'라고 말하는 것은 좀 이상하다.
문자 그대로 바로의 아버지라는 뜻은 아니다. 무슨 의미인가?

    실제로 그만한 권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병렬구에 '그 온 집의 주,' '애굽 온 땅의 치리자'(8)와 같은 의미이다.

8. 요셉의 말을 다 듣고 난 후, 요셉이 베냐민을 안고 울면서 드디어 형님들도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여러분이 요셉의 형이라고 한다면 요셉에게 첫말을 어떻게 했을까?

    그 때 일은 정말 미안하다. 그 꿈 참 용타;
    아마 첫 마디가 엄청나게 어려웠을 것이다. 현장에 없었던 르우벤이 가장 쉬웠을까?

9. 아버지를 모시고 오라는 요셉의 말과 베냐민마저 잃어버릴까 안절부절하고 있는 야곱의 현실을 비교해보자.

    야곱에게 엄청난 복이 준비되고 있음에도 걱정과 근심에 잡혀 병석에 누워있다;
    우리 삶에는 이런 일이 없을까? 실제로 참으로 행복해야할 사람이 이런 걱정에 빠진 경우는 없을까? 눈을 조금만 넓게 열면 엄청난 행복이 우리를 감싸고 있음을 볼 수 있을텐데. 아람군대는 보고 하나님의 군대를 보지 못하는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바로 그렇다. 반대로 바울은 보이지 않는 장차 나타날 영광을 미리 보는 바람에 세상의 아픔이 아픔으로 보이지 않았다.

10. 요셉은 자신을 온 세상을 다스리는 애굽의 총리로 보는가 아니면 가나안땅 야곱의 아들로서 잠시 타향에 일이 있어서 온 사람으로 보는가?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내게로 지체말고 내려오사(9); 내려가서 올라오라가 아니고 올라가서 내려오라고 말하는 것에서 요셉은 자기 삶의 중심이 가나안임을 잊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삶의 중심은 이 땅인가? 하늘나라인가? 이 땅에서 살고싶지만 어쩔 수 없이 가야하는 곳이 천국인가? 아니면 천국에서 이 곳으로 잠시 유배(?)를 왔는가? 아니면 잠시 훈련을 받고 돌아가야 하는 훈련소인가?

11. 지금까지 시치미를 떼고 형님들을 닥달했지만 속마음은 상당히 다급했음을 알 수 있는 말이 두 군데 있다면?

    지체말고(9), 속히(13)

12. 요셉의 처사가 얼마나 이뻤으면 바로가 요셉의 형들이 왔음을 이토록 기뻐했을까! 바로 뿐만 아니라 신하들마저 기뻐했음을 알 수 있다. 히브리 노예 출신이라고 천대받지 아니하고 그의 가족을 진심으로 환대하는 그들을 보면서 우리가 불신자들에게 어떠해야할 지 생각해보자.

    그리스도인들이 입만 까져서 비난을 받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교회에서는 유능할지 몰라도 직장에서 유능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개선해야할 점이다. 직장에서 맡겨진 일에도 전심으로 감당할 수 있어야한다. 교회 일이 우선이라는 핑계로 직장 일이나 직장동료들에게 적대감을 가지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순교자적인 정신으로 현명하게 노력해야한다. 총리가 된지 7년째임에도 시기와 질투보다는 개인적인 행복을 함께 기뻐하는 동료들이 우리에게도 있어야한다.

13. 바로의 말 중에 '너희 기구를 아끼지 말라'는 뜻은(20)? 수레는 요즘 표현으로 바꾸면?

    다 버리고 오라. 필요한 것은 다 제공할 테니까.
    자가용을 공짜로 제공하는 셈이다.

14. 애굽으로 올 때 특별히 가지고 온 물건이 유향, 꿀, 향품, 몰약, 계자, 파단행, 배나 되는 돈이다.
내려갈 때는 이것이 어떻게 변했는가?

    수레(자가용), 길양식(보너스), 옷 15벌(엄청나게 귀한 것, 출애굽시에는 한 벌로 40년간 입었다. 지금처럼 자주 바꾸는 것이 아니다), 은 300(요셉같은 종을 15명 살 수 있는 액수), 수나귀 열필에 실은 물품(도로 가져와야할 건데 뭣하러 보내나?), 암나귀 열필에 곡식과 떡과 양식(애굽으로 올 때 먹을 것)을 실었다; 실어 갔다가 바로 내려와야할지언정 내려가는 과정에서 형님들이 기분과 그것을 보고 힘을 낼 부친을 생각하면 이성적인 계산보다는 감정을 더 중요시하는 것이 옳다. 인간관계도 계산이 너무 앞서면 메마르다. 돈 없는 가장에게 아내가 분위기에 약한 것이 얼마나 좋은 점인가?

15.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형들이 행렬이 이전에 비하여 대단히 화려해졌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무엇일까?

    나귀에 자루를 싣고 가던 행렬이 수레를 끌고 가는 행렬로 바뀜
    (손수레 끌고 가던 모습에서 자가용 트럭을 몰고 가는 모습으로)

16. 형들을 돌려보내면서 노중에서 다투지 말라고 부탁을 했다.
요셉이 무엇을 예상하고 형들이 노중에서 다투지 말라고 당부하는가?

    동생을 팔아버린 일에 대해서, 아버지에게 고백해야하는 일

17. 야곱이 모든 것, 베냐민마저 포기하고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냈을 때(43장에서)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그 만족감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완벽한 만족감, 잃어버릴까 두려워했던 아들뿐만 아니라 죽은 아들이 총리가 되어 나타남(족하도다)
    ↔ 아브라함이 바친 이삭 (온 민족의 조상), 죽으면 죽으리라.

18. 다음 장에 보면 야곱은 애굽으로 가는 일을 두렵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쉽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애굽으로 향한다. 왜 그랬을까? 어떤 위험성이 있을까? (46장의 1, 2번 질문을 참고할 것)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가나안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보다 잃어버렸던 아들을 만날 수 있다는 인간적인 생각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렸을 것; 일시적인 흥분이나 감격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과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위험 →애굽으로 향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물었더라면 노중에서 갈등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

19. 아버지는 여전히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죽은 줄로 알고 있는데 요셉을 만나게되면 형들이 요셉을 팔아버렸다는 사실을 알게될 것이다. 이제 형님들은 사실을 고백하고 아버지께 용서를 빌어야한다. 어느 때 고백하는 것이 가장 유리할까? (정답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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