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7장 |
이스라엘은 국명, 에브라임은 그 나라의 중심 지파, 사마리아는 그 나라의 수도: 결국은 다 같은 말이다. 2. 치료하려고 하는데 더 악이 드러난다는 것(1)은 의사가 진료를 잘못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경우는 분명히 후자의 경우다. 일반적으로 환자가 왜 치료를 거부할까?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거나 의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행하는 궤사, 도적질, 노략질이 악한 일이라는 것조차 모른다는 것을 비유로 설명하는 셈이다. 알콜중독이나 암 판정을 받고 치료를 거부하는 사람처럼 스스로 더 악화시킨다. 암 판정을 받으면 일단 치료를 거부하다가 더 악화돼서야 다시 찾아온단다. 이스라엘은 끝까지 찾아오지 않는 환자일지도 모른다. 3. 이스라엘의 죄는 음욕이 불일듯하고, 왕과 방백들을 뒤집어 없고(쿠데타), 외세를 의지하는 것 등이다. 어떻게 이런 죄들을 짓게 되었는지 그 근본적인 죄가 도대체 무엇인가?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2, 7, 10, 13, 14, 15): 하나님을 기억하지도 않고, 찾지도 않으면서 인간적인 수단을 동원하다보니 일이 꼬일 수밖에 없다. 온갖 냄새가 역겹다. 4.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이다. 잠시 지나면 그칠 테니까! 반면에 그치지 않는 장마비를 피해보겠다고 처마 밑에서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비를 맞든지 우산을 구하든지 해야 한다! 장마비처럼 피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1-3절에서)? 하나님의 기억: 하나님께서 기억하고 계시면 ‘죽었다!’ 빨리 돌아서라는 경고다. 감출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고, 도망갈 수도 없다. 그런데도 악한 행위에 둘러싸여(=악한 행위를 옷처럼 감고) 버젓이 하나님 앞에 나타났다(2)? 어느 한쪽 구석에 탈이 난 정도가 아니라 온 몸이 악창으로 둘러싸인 꼴이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모른다. 5. 이스라엘이 기쁘게 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신데 누구를 기쁘게 하느라고 바쁜가? 왕과 방백: 악한 말과 거짓으로 왕과 방백을 기쁘게 한다는 것은 권력자에게 빌붙어 온갖 못된 짓을 자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권력자를 기쁘게 하려면 백성을 압제할 수밖에 없다. 왕과 방백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인정하고 그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겠는가? 반면에 하나님과 상관없이 왕과 방백을 기쁘게 하려면 백성을 수탈하는 수밖에! 6. 간음하는 자를 왜 달궈진 화덕에 비유했을까(4)? 음욕이 끊임없기 때문: 이 표현에서 ‘달궈진’이란 말은 흥분보다는 지속적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냥 화덕이 아니라 쉬지 않고 달구어지는 화덕이다. 반죽하는 동안 잠시 멈출 뿐 계속 달아오른 화덕이다. 못된 짓도 좀 쉬어가면서 하지? 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부지런하더라(미 7:3). 선한 일에 열심을 내야지(딛 2:14)! 7. ‘술의 뜨거움을 인하여 병이 나는 것’과 ‘오만한 자들로 더불어 악수하는 것’의 공통점이 뭘까? 제 정신이 아니라는 것: 왕의 잔칫날에 술을 떡이 되도록(=술의 뜨거움) 마셔놓으니 방백들은 열에 들떠 헛소리하는 것(=병) 같고, 왕은 자기를 놀리는(=오만한 자) 방백과 놀고 있다! 술에 취해 위아래도 모르는 상태를 가리킨다. 옛 은사를 대접한다고 술집에서 열심히 마시더니 어느 새 선생님을 향해서 ‘이 새끼, 저 새끼’ 하더라! 그러면서도 웃고 떠든다! 맑은 정신으로는 쳐다볼 수 없는 기가 막히는 장면이다. 그러다가 심한 경우에는 왕을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기도 했다. 8.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6-7절에는 식은 화덕과 뜨거운 화덕이 바탕에 깔려 있다. 각각 무엇을 가리키는가? 식은 화덕은(=아무 일도 없는 것 같지만) 음모를 꾸미는 것, 뜨거운 화덕은 음모를 실행하는 것이다. 음모의 내용은 재판장이든 왕이든 엎어버린다. 식은 화덕이라고 무심코 손을 댔다가는 화상을 입는다. 북 이스라엘의 역사 200년 동안 8번의 쿠데타가 일어났는데 특히 말기에는 연속적으로 네 번 일어났다(살룸, 므나헴, 베가, 호세아: 왕하 15장, 17장). 이런 무질서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데서 생기는 현상이다(7). 9. 전병은 뒤집어 가면서 앞 뒤를 고르게 구워야 한다. 뒤집지 않으면 한 쪽은 타고, 반대 쪽은 설익는다. 이스라엘이 왜 이 모양이 됐는가? 하나님대신 외세(이방인, 앗수르, 애굽)를 의지하다가: 다른 나라의 힘만 빌려오려고 해도 결국은 그들의 문화, 우상까지 들어오게 마련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함(구별됨)을 유지하지 못한 채 이것 저것 섞여버렸기 때문이다(시 106:35). 10. 이스라엘이 온갖 악을 행하고(1-7), 이방과 혼잡되었으니(8) 이제 어떻게 될까(9)? 물론 이스라엘은 이 사실을 모른다. 곧 죽을 것: 힘이 있는 줄 알았더니 그게 자기 힘이 아니다. 이방에 의지하여 겨우 버티고 있을 뿐이다. 이방의 힘은 자기 힘이 아니다. 도와주는 것 같아도 결국은 야금야금 먹어치운다(9a). 여기서 백발이 얼룩얼룩하다는 것은 늙어 죽을 때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이런 형편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직도 한창인줄 알고 못된 짓에 열심을 내는 노인네다. 그러다가 갑자기 돌아가시면 사람들이 그런다, ‘팔팔 했는데?’ 11. 문제가 한 둘이 아니다(10절의 ‘이 모든 일’). 가장 큰 문제는?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않는 것(10, 13): 교만해서 그렇다.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10) 이 표현을 직역하면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말한다’ 는 것이니 ‘얼굴에 교만하다고 쓰였다’는 식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12. ‘어리석은 비둘기’란 먹이를 찾아서 그물로 날아드는 비둘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을 우리 아이들의 표현으로 바꾸면 뭘까? 닭대가리: 머리 나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왜 하필이면 닭이냐?’고 물었더니 머리가 작아서 그렇단다. 하나님 대신 애굽이나 앗수르를 의지하는 것이 바로 그렇게 어리석은 짓이다(왕하 15:19-20, 17:3-4). 13.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전혀 찾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성심으로 부르지 않았고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었을 뿐’이다. 어디서 부르짖어야 하는데? 성전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이 아니라 그냥 통곡했을 뿐이란 의미다. 같은 맥락에서, 곡식과 새 포도주를 인하여(=그저 육신의 필요만 추구한다는 의미) 모이며 하나님을 거역했다! (참고, ‘모이며’를 번역에 따라 ‘몸을 찢으며’라고 하기도 한다) 1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연습시켰다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예를 들어보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이상한 방법으로 전쟁에서 이긴 예가 그렇다: 모세가 팔을 들면 이기고 내리면 지는 전쟁, 7일 동안 돌기만 해도 무너지는 여리고, 칼보다 우박에 죽은 숫자가 더 많았던 벧호론 전투, 겨우 300명이면 알맞다면서 3만 명을 돌려보내게 한 기드온... 그렇게 연습시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강건케 하면 뭐 하나 되레 못된 짓을 하는 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공들여 키우지나 말 것을? 15. 호세아의 메시지는 참으로 명확하다. 패역한 이스라엘의 모습이 눈에 보이듯이 잘 그려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림처럼 보이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악한 모습을 어디에 비유하고 있는가(4 가지 정도)? 달아오른 화덕, 뒤집지 않은 전병, 어리석은 비둘기, 속이는 활(빗맞은 화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림처럼 보이게 설명하는 것은 훌륭한 능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