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4 |
하나님을 섬기며 평화를 누리던 시대가 끝이 남을 의미한다(적어도 사사기에서는): 훌륭한 지도자가 사라진 후에 그의 업적도 함께 사라지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당대에 좋은 교회를 일으켜 세운 목사가 떠난 후에 쓰러지는 교회도 적지 않다. 훌륭한 지도자는 자신이 사라진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로이드 존즈 목사님이 정말 훌륭한 글을 많이 남겼고 좋은 교회를 세우셨다. 그 분이 떠난 후에 그 영향력이 지속되도록 했어야 했는데 그리 오래 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2. 하솔은 여호수아 시대에 점령된 지역(수 11:1-14)이니 이스라엘 경내(북부)에 있었다. 아마도 납달리 지역이었을 것이다(6). 그 때 왕도 야빈이었는데 지금도 야빈이라고? 바로나 아비멜렉처럼 야빈도 왕을 가리키는 관직명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방의 시스라가 군대장관일까? 아마도 조그마한 나라들의 연합체의 왕이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시스라도 자기 영역 안에서는 왕이었던 셈이다. 3. 이스라엘이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불신앙 때문이었다(수 17:18).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무엇이 더 잘 보였던가? 철병거(수 17:16, 삿 1:19):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 철병거보다 더 잘 보여야 하는데(민 14:7-9) 쉽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나라가 6.25 사변 때 그렇게 속절없이 당한 것은 그 놈의 탱크 때문이었다. 지레 겁을 집어먹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이스라엘도 딱 그 짝이다. 4. 이렇게 당하는 것이 벌이라면 세 번 째인데 이전과 좀 달라졌을까? 심한 학대를 당했단다(3): 이전에는 그냥 섬겼다더니 이제는 심한 학대를 당했단다. 기간은 짧았지만 강도는 더 세어진 셈이다. 한 두 번 맞으면 정신을 차려야 하는 건데... 좋은 약을 개발하니까 병도 점점 강해지는 것처럼 이스라엘도 점점 면역이 생기는가보다. 악한 짓도 처음하기가 어렵지 한 두 번 하다보면 솜씨도 늘고 심장도 강해지는 법이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악해지니까 학대의 강도도 점점 강해진다. 5. 왜 전쟁에 나갈 수도 없는(6-7) 여자를 사사로 세우셨을까? 여자는 목사도 안 시키면서? 어쩌면 한국보다 더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던 것처럼 보이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어려운 시절에 여자를 사사로 부르셨다는 것은 우리의 이런 생각이 잘못이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 아닐까? 모세의 누나 미리암도 선지자로 불렸으니(출 15:20, 미 6:4) 여자라서 사사나 선지자가 될 수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참고, 왕하 22:14절의 훌다). 전쟁에 직접 나설 수 없다면 유능한 사람에게 그 부분은 위임하고서도 사사 노릇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여자가 어디?’ 이런 생각은 아무래도 유교의 영향인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나 조선시대 중기까지도 전혀 여자는 차별이 없었던 것 같다. 6. 드보라가 관할하던 지역은 에브라임 산지와 벧엘 사이다(5). 이스라엘의 중부지역이라고 보면 되겠다. 야빈에게 압제를 받던 지역은 어느 지파의 영역이었을까? 납달리, 스불론(6, 북부지역으로 평야지대): 시스라의 압제가 심했다 해도 전국적인 것인 아니었던 것 같다. 철병거의 기동력이 떨어지는 곳 즉 산악지대는 다스릴 수 없었던 것 같다. 드보라가 사사로 있던 곳은 에브라임 산지였다. 드보라는 고통 당하는 동족을 위해서 관할 밖의 일에 관심을 보인 셈이다. 7. 철병거를 가진 시스라와 한 판을 하기 위해서 다볼산을 택한 이유가 있을까? 납달리 가데스에서 상당히 남쪽으로 내려온 곳에 위치한 다볼산은 완만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젖가슴처럼 생긴 산이다. 주변은 이스르엘 평원이다. 아마도 완만한 능선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공격하기가 유리하고, 그리로 이동하는 과정을 통해서 모든 철병거가 집결되도록 유인했을 것이다. 넓은 평지 가운데 가볍게 돌출된 산이니 철병거가 모이기도 쉬웠을 것이다(7). 간단하게 철병거를 제압한 것으로 보아 병거가 제대로 기동하지 못하도록 비를 내리신 것은 아닐까? 8. 드보라 사사가 동행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용기가 부족한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의 사람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믿음일까? 같은 말이다: 그냥 ‘예’ 했더라면 더 큰 공을 세웠을텐데?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되다’는 말씀처럼 군소리 않고 순종하는 사람이 더 복된가보다. 그렇더라도 바락의 이 요청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기드온도, 모세도 완벽하게 하나님만 의지한 신앙인이었다기보다는 약점이나 용기가 부족함에도 하나님에게 제대로 쓰임을 받았다. 없는 믿음을 있는 척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신앙도 없이 있는 것처럼 기적을 거부한 아하스가 되지 말고 없으면 없고 약하면 약한대로 도움을 구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필요하다. 전쟁에서 가장 큰 공은 뭐니뭐니해도 적장을 죽이는 것이다. 이렇게 큰 공을 남에게 빼앗긴다 해도 하나님의 위대한 선지자가 함께 하는 것이 힘이 된다면 그리하는 것이 좋겠다. 인간은 다 연약한 것이거늘! 9. 바락의 말을 듣는 순간, 드보라가 하는 말을 보면 드보라는 그 순간에 무엇을 보았는가? 여인의 손에 죽는 시스라: 하나님의 예언을 그림처럼 볼 수 있었던 모양이다. 드보라에게 특별히 그런 은혜를 베푸셨는데 나도? 적어도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는 종종 하나님께서 그런 방법으로 자신의 뜻을 나타내셨다. 10.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모세의 장인은 이름이 뭐더라(참고, 민 10:29)? 이드로, 혹은 르우엘: 그런데 호밥은 또 뭐야? 아마도 호밥은 처남(NIV)일 것이다. 장인을 의미하는 히브리어가 처남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혼란이 생길 수도 있다. 11. 겐 사람에 대한 언급이 앞에서 있었는데? 왜 여기서 또 언급할까? 1:16: 모세의 처가 식구들이 처음에 정착한 곳은 유다의 경내였다. 그런데 그 중의 일부가 납달리 지역으로 이주하여(11) 심지어 이스라엘을 압제하던 야빈과 가깝게 지냈다(17). 이들이 시스라를 제거하는데 연루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 기록된 것이다. 12. 바락이 다볼산에 올랐다는 소식은 시스라가 듣기에는 독립전쟁을 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을 제압하기 위해서 군사력을 총동원하는데 철병거를 왜 강으로 모았을까? 기손 강이 평소에는 수량이 그리 많지 않단다. 그래서 병거들이 강을 따라 달리기 쉬운 탓이다. 대부분의 도로는 강을 따라 형성된다. 평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다볼 산을 택한 것도 이런 점을 이용하여 병거를 한 곳으로 집결시켜 분쇄하려는 의도를 가지셨을 것이다. 13. 대적이 온 군대를 다 모아서 싸울 준비를 마치고 한 곳에 집결했다. 바락이 시스라의 군대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하나님께서 한 방에 끝내시려는구나!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군대와 싸운다면 더 많은 시간과 희생이 필요하겠지만 이왕에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니 한 방에 끝낼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담대함이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싸우자고 하던 갈렙과 여호수아가 그랬다. 14. 시스라가 왜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을 쳤을까(15)? 병거를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뜻이다. 가령 땅이 물러 진흙처럼 됐다거나... 5:21절을 참고하면 갑자기 비가 내리지 않았을까? 만약 그런 상황이면 병거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탱크부대가 연료를 공급받지 못하면 괴멸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15. 여자인 야엘이 시스라를 기꺼이 영접하며 서로 알아보았다는 것은 집안끼리 아주 가깝게 지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보면 헤벨의 가족은 배신자라는 말이다. 그런데 헤벨의 아내 야엘은 왜 또 시스라를 배신할까? 야엘이 그렇게 행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남편이 이스라엘을 배신한 것에 대한 참회의 마음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사람은 참으로 복잡다단한 존재라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참으로 많다.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다. 하나님께 잘 보이는 수밖에 없다(23). 더구나, 국가간의 정리라는 것은 개인처럼 그렇게 끈끈한 것이 아니다. 힘이 없거나 이용할 가치가 없다면 언제나 배신당할 수 있다. 16. 잠자는 사람에게 말뚝을 박다니? 야엘이라는 여자, 무섭다! 다른 도구가 달리 없었을까? 유목민들의 텐트를 치는 일은 여자들의 몫이었단다. 그러니까 말뚝 박는 일은 익숙한 일이었단다. 17. 하나님 없이 잘 나가는 인생을 시스라의 예를 들어서 설명해보자. 철병거 900승을 이끌고 이스라엘을 호령하던 시스라가 표본실의 나비처럼! 18. 야빈의 오랜 압제에서 벗어난 것은 누구의 공로인가? 외견상 바락, 드보라, 야엘의 공로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다. 하나님께서 드보라를 세우셨고, 말씀을 주셨다. 드보라의 말에 순종한 바락의 공로도 작은 것이 아니다. 영문도 모른 채 이런 역사에 끼이게 된 야엘은? 시대의 흐름을 읽은 자인가? 아마도 하나님께서 무슨 감동을 주셨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