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5 |
우리 식으로 하면 한 사람이 선창을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쾌지나칭칭나네 하는 식으로 화답하는 형태 아니었을까? 이스라엘에서도 그런 유형의 화답송이라는 것이 있단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문장이 짧게 끊을 수 있는 단문 형태로 되어 있다. 2. 아름다운 신앙공동체에 있어야 할 세 가지 요소를 본문에서 찾아보자. 두령의 영솔(7, 12), 백성의 헌신(14-18), 여호와께 찬송(3):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일에 지도자가 용감하게 나서고 백성들은 순종하고 하나님은 이루어주셨다. 멋진 지도자를 만나 마음껏 헌신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귀한 복이다. 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 아닐까? 여기 두령은 여성형이다. 드보라가 주축이 되었기 때문이다(3, 7). 3. 드보라의 노래를 들어야 하는 왕(3)은 누구인가? 세상의 열왕들아 들으라는 말이다. 다른 나라에 자랑하는 셈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자랑이다. 4. 하나님께서 왜 세일(에서의 근거지, 창 36:9)에서 나와서 에돔 들을 지나시는가? 출애굽 여정 중의 일부이다. 출애굽 때 보여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그 때 역사하셨던 것처럼 이번 일에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고백이다. 5. 군대가 행진하면 지축이 흔들린다던가? 하나님께서 행진하시면?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찢어져 물이 샌다. 세일산, 에돔 들, 시내산이 진동했다(신 33:2). 이런 위엄의 하나님께서 이번에 드볼 산과 기손 강에서 대적들을 다 물리치셨다는 것이다. 6. ‘대로가 비었다’는 말과 ‘행인들이 소로로 다녔다’는 말이 어떻게 ‘이스라엘에 관원이 그치고 그쳤더니’ 라는 말과 의미가 통하는지 설명해보자. 셋 다 이스라엘의 황폐함을 의미하는 말이다. 위험하니 대로에 사람이 없고(사 33:8) 작은 길로 숨어서 다닌다. 법질서를 지켜줄 지도자도 없다. 이럴 때에 드보라가 나서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7. 새 옷, 새 신, 새 집, 새 책... 다 좋다. 하나만 빼고? 새 신(God): 새 것이 아무리 좋아도 예전 것이 더 좋은 것도 적지 않다. 하나님을 버리고 새 신, 즉 다른 신을 섬긴 탓에 전쟁이 닥친 것이다. 그러나 방패도 없고 창도 없는 판이니! 하나님을 버렸을 때는 그랬지만 이제는... 8. 바락이 소집한 군대는 겨우 만 명이었는데(4:6, 14) 웬 4만 명(8)? 선봉부대인 납달리, 스불론 지파의 군대만 만 명이었다. 개전 이후 다른 지파에서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모양이다(14-17). 9. 이스라엘의 방백(9)이란 드보라의 명을 받고 백성들을 인솔한 장수들을 가리킨다. 그들을 사모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진정으로 감사한다는 뜻일텐데 무엇이 그렇게 고마운 걸까? 방패도 창도 없는 상태에서(8) 즐거이 헌신하였으니(9): 자신도 어려우면서 힘을 다해 형제를 돕고 이웃을 섬기는 신실한 성도의 모습을 보면서 목사가 감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10. 흰 나귀를 탄 자는 상류층을 가리키고, 귀한 화문석(꽃돛자리)에 앉은 자들은 부유층을 가리킨다. 그러면 길에 행하는 자들(10)은 누구를 가리킬까? 전에는 무서워 나갈 수도 없던 길을 마음 놓고 활보할 수 있는 자라는 말인데 일반인들, 소시민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10절은 빈부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행하실 일을 널리 전하라는 말이다. 11. 11절의 번역이 제 각각이긴 하지만 개역의 번역대로라면 ‘활 쏘는 자의 지꺼림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란 어떤 곳일까? 대적의 위협이 사라진 곳: 일반적으로 우물은 성 밖에 있어서 대적의 위험이 있으면 물 길으러 함부로 나갈 수 없었다. 대적의 지껄이는 소리가 사라졌으니 아낙네들의 웃음소리만 들리는 그 곳에서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전하라는 것이다. 12. 대적을 물리치고 여호와의 의로우신 일을 전하면서 백성이 성문에는 왜 내려갔을까(11)?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가능했다는 말이다: 성문 광장에서 상거래, 재판, 친교 등이 이루어졌다(창 19:1, 23:10, 18, 신 21:19). 13. 드보라가 일어나 앞장 서고 바락이 포로들을 끌고 갈 수 있었던 것은(12) 하나님께서 강림하셔서 대적(=용사)을 치셨기 때문이다(13). 또 누가 이런 일에 헌신하였는가? 남은 귀인과 백성(13): 야빈의 압제 시절에 살아남아서 이번 전투에 참가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14-17절은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다. 14. 에브라임이 혈통적으로는 아말렉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따라서 ‘아말렉에 뿌리 박힌 자’는 혈통에 관한 말이 아니다. 그러면 무엇과 관련된 말일까? 주거지: 이번 전투에 참가한 에브라임 사람들은 본래 아말렉 족속이 거주하던 곳(주로, 골짜기, 민 14:25))에 살던 사람들이었다는 말이다(삿 12:15). 15. 베냐민은 다른 지파에 흩어져서 전투를 도운 모양이다(14). 말하자면 지파로 뭉쳐서 전투에 참가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유독 용사가 많고 싸움에 능한 지파인데(20:16, 창 49:27) 왜 그랬을까?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의 중부지역에 거하고 있었으므로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야빈의 압제를 덜 받은 셈이다. 그래서 이번 전투에 개인 자격으로 참가한 모양이다. 16. 마길이 누구더라? 지파 이름은 아닌데? 마길은 므낫세의 아들이다. 즉 므낫세 지파를 가리킨다. 므낫세 지파는 요단 강의 동편과 서편, 두 곳을 얻었는데 아마도 여기서는 서편의 반 지파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요단 서편에 거한 지파는 아셀, 스불론, 잇사갈 지파와 경계를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7. 마길에게서 나온 ‘다스리는 자들’과 스불론에게서 나온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 중에 어느 쪽이 지위가 높을까? 아마도 마길의 다스리는 자: 마길의 다스리는 자는 아무래도 지휘관을 의미하는 듯하고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는 장군의 부관, 즉 장교를 의미하는 듯 하기 때문이다. 18. ‘잇사갈의 심사를 바락도 가졌다’는 것은 바락과 마음이 일치되었다는 말이고 ‘골짜기로 달려 내려갔다’는 것은 다볼 산에 싸운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잇사갈이 바락과 한 마음이 되어 싸웠다는 말이다. 마음이 일치하지 않는 지파도 있었을까? 르우벤, 길르앗, 단, 아셀(16-17): 15절의 ‘큰 결심’과 16절의 ‘마음에 크게 살핌’은 같은 말이다. 전쟁에 참여할 것인지 아니 할 것인지에 대해서 격론을 벌였다는 말이다. 결국은 ‘우리 가운데 앉아서 목자의 피리 소리나 듣기로’ 한 모양이다. 길르앗 지방에는 므낫세 반, 르우벤, 갓 지파가 있었으니 여기서는 (요단 동편)므낫세와 갓 지파를 가리키는 셈이다. 단 지파와 아셀 지파는(므낫세도) 해변을 끼고 있다. 이들은 동족의 고통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생업에만 열중했다. 그러니까 에브라임, 베냐민, 므낫세(서편)의 지원을 받은 잇사갈(15), 스불론, 납달리 지파(18)가 싸웠고, 므낫세(동편), 갓, 르우벤, 단, 아셀은 방관했다. 유다와 시므온 지파는 너무 멀고! 언약공동체라는 정신이 많이 희박해져 있는 셈이다. 19. 전쟁의 양상을 보면 야빈이 압제한 지역이 그리 넓지 않다. 겨우 갈릴리 서편의 좁은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에 무슨 열왕이 와서 싸웠다고? 이스라엘의 대 여섯 지파와 맞붙은 열왕? 작은 부족들의 연합체 정도이었겠다. 그래도 전쟁은 전쟁이다. 그런데 ‘돈을 탈취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결국 돈 때문에 벌어진 전쟁이라는 말인가? 돈(=은)이란 전리품을 가리킨다: 전쟁의 궁극적인 목표가 전리품이다. 돈 때문에 벌어진 전쟁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사람, 농산물, 석유, 아편 시장 ... 경제적 이유가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 놈의 욕심 때문에! 20. 별들이 하늘에서 시스라와 싸웠다(20)? 평소에 수량이 그렇게 많지 않은 기손강이 시스라의 군대를 표류시켰다(21)는 표현과 관련지어 생각해보자.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현상을 동원하여 도와주신 것에 대한 묘사일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격려하며(21) 힘차게 달린다(22). 대적은 도망치느라고 바쁘고! 21. 전쟁에 무심했던 지파가 여럿 있었음에도 유독 메로스만 이렇게 저주하는 것은 공평치 못한 것 아닌가? 다른 지파들은 지역이 다소 떨어져 있지만 아마도 메로스는 당연히 참가해야 할 위치에 있었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야엘의 행위를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24-27)은 이들이 야엘과 극히 대조적이었음을 강조하는 셈이다. 22. 시스라의 어미가 왜 시스라의 병거가 더디 온다고 걱정을 하는가? 걱정이 아니라 전리품을 챙겨서(30) 빨리 오지 않는다고 안달, 혹은 불평하는 것이다: 시스라가 전쟁에서 패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이다. 23. 승리의 노래에 굳이 시스라의 어미가 하는 말을, 그것도 가상으로, 언급할 이유가 무엇인가? 역설이다: 이런 기대감으로 시스라를 기다라고 있겠지만 실상은 ‘부끄럽게도 여인의 손에 죽었다’는 것이다. 24. 또 40년(31)? 그 후에는 또 악한 길로 갔더라는 얘기 아닌가? 맞습니다: 또 그 길로 갔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