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세리장(여리고는 목이 좋아서 세리장 중에도 요직임), 흠은 키가 작은 것(마음먹기에 따라 결코 흠이 될 수 없음),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코스를 미리 예상하고 나무에 올라감. 소위 잘나가는 어른께서?), 죄인; 돈의 힘과 권력의 힘을 함께 가진 자, 키가 작은 사람이 다구지다고 한다 따라서 강점이 될 수도 있다. 나폴레옹, 강감찬, 박정희처럼. 2. 죄인이었던 삭개오가 예수를 만나서 회개하고 사람이 변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도대체 삭개오가 무슨 죄를 지었는가?
부자이고 세리장이니까 세리 노릇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착취를 했겠느냐는 짐작일 뿐이다; 3. 삭개오가 복을 받게된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심(1점); 이것도 소중한 것이며 복이다. 4. 근심하며 돌아간 부자 관원(18:18-23)에 비하면 삭개오는 정말 대단하다. 죄짓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예수를 만나서 삭개오가 이렇게 변했다고 보기는 무리가 있다. 많은 사람이 운집한 가운데 키가 작고 지위가 높은 그가 뽕나무에 올라가서까지 예수를 보겠다고 하는 것과 즐거워하며 예수를 영접하는 모습,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다라는 말에서 삭개오는 어떤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좋을까? 죄인이라고 불리는 세리 일을 하면서도 바르게 살려고 애를 많이 썼던 사람; '주일을 제대로 지키고, 교회를 섬길려면 이 짓을 때려 치워야하는데......' 라면서 고민하는 성도. 그런 가슴아픈 자에게 예수님은 찾아오셔서 놀라운 복으로 채우시는 것이다. 바울이 아주 흉악한 악질이었는데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무엇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위하는 것인지를 잘 모른 채 열심만 앞선 그를 찾아오셔서 방향만 제대로 잡아 주셨다. 즉 바울에게 변한 것은 방향이지만 그 이전부터 변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었다. 삭개오에게도 비슷한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그리 무리는 아닌 것 같다. 5. 삭개오가 예수님께 접근하는 데 두 가지 장애 요소가 있었다. 하나는 키가 작다는 것으로 대표될 수 있는 자신의 내부에 있는 문제인데 대부분 자신이 해결해야할 문제이다. 꼭 한번 만나 보아야겠다라고 마음을 먹는 것도 마찬가지 이다. 그 외에 또 다른 장애 요소는 무엇인가? 많은 군중이라는 외부적 요인이다; 이건 삭개오가 해결할 문제라기 보다는 우리의 문제이다. 예수님께 접근하려는 사람을 우리가 막고 있지 않은 지 조심해야한다. 6. 삭개오가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며,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다고 하는 말에서 우리가 헌금을 드릴 때 본받아야할 점이 있다면? 자원하는 마음, 혹은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것; 헌금은 의무라기보다는 감사의 예물이어야한다. 하나님께 받은 것의 극히 적은 일부를 감사함으로 되돌려 드리는 것 이어야한다. 7. 삭개오는 평생 사람 대접을 제대로 못 받고 살아왔을 것이다.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고 살았는데 그 모든 원한이 한꺼번에 풀리는 말은 무엇일까? 이 사람(삭개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아브라함은 유대인의 조상이다. 따라서 이 말은 삭개오를 당당한 유대인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발언이니 삭개오러서는 얼마나 감격했을 것인가?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다. 8. '열 므나'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는 제자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알았기 때문인데 그와 대조를 이루는 표현이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다'는 것이다. 1) 이게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임하는 것과 대조가 되는가? 그렇다면 2) 이 비유의 핵심은 무엇인가?
1)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다는 말은 예수님의 죽음이 가까웠다는 뜻 9. 그 당시 유대의 통치자들은 로마에서 임명하거나 허락을 받아야 했다. 비록 왕자로서 왕위를 물려 받았다해도 로마의 인준을 받아야했으므로 왕위를 받으러 로마로 가야했다(12). 왕위를 받으러 갔다가 도로 빼았겨 버린 왕도 있었고 때로는 백성의 대표들이 로마로 가서(14) 왕을 바꾸어 주든지 로마 원로원에서 직접 다스려 달라고 해서 왕이 귀양을 가기도 하고 총독이 부임하기도 했다. 자, 본문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왕위를 얻어서 돌아오는 기간이 짧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장사해서 5배, 10배 이익을 남겼다는 것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음; 10. 제자들은 당장에 예수님께서 왕위에 오르는 것을 기대하였을 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기다리면서 충성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재림 때에 이 모든 일에 대해서 공과(功過)를 따라 상벌이 있을 것이다. 누가 가장 곤란할까?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자; 예수가 메시야임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럼 모양이 될 수밖에 없다. 11. 가장 충성한 종의 축복은?
열 고을을 차지했다 (1점) 12. 악한 종의 잘못이 무엇인가? 수건에 싸서 땅에 묻어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그것도 당시에 돈을 보관하는 방법 중에 하나이었기 때문이다. 묻어두고 누군가가 훔쳐갈까 얼마나 걱정을 했을까? 성공적으로 지킨 것만도 수고를 많이 한 것이다. 주인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두려워한 것; 주인이 어떤 분인지를 몰랐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택했을 뿐이다. 두려워하는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한다.
13. 예수 믿으면 됐지 굳이 또 그렇게 열심히 성경공부를 해야되고 예배에 시간마다 쫓아다녀야 하는가? 천국은 가진 자가 더 많이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단순한 재물의 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제곱에 비례한다. 게으른 종의 말로가 비참해진 것은 그가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기 때문이다(22). 14. 왕위를 받으러 간 귀인과 예수님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다시 온다는 것,
15. 나귀를 구해오라고 하시면서 제자들을 보내시는 것은 전능하신 분이니까 미리 알고 시키는 것일까?
예지적인 능력;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성경을 하나님께서 쓰신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다. 16. 예수님이 왜 하필이면 나귀새끼를 타셨는가? 좀 튼튼하고 위엄도 있는 말이 더 어울린 텐데?(참고 슥 9:9-10)
평화의 왕, 겸손한 왕; 말이나, 노새는 전쟁용으로 사용되었지만 나귀, 더구나 새끼는...... 어쩌면 우스꽝스러웠을 지도 모른다. 17. 겉옷을 까는 행위는 예수를 왕으로 인정하는 행위이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그렇게 환영하던 사람들이 왜 갑자기 며칠 뒤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을까? 엉뚱한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이 되어서 자기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해 줄것이라는 기대가 어긋났을 때 사랑은 갑자기 미움으로 변한다. 18. 나귀새끼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이 나귀새끼가 난생 처음 겪는 일은 무엇인가? 여태 아무도 태워보지 않았음; 아이고, 무거워라. 이렇게 많은 사람의 환호를 본 적이 없음 19. '소리지르는 돌들' 이라는 책이 있다. 사람이 입을 다물면 돌이 소리를 지르리라 는 본문과는 내용상 약간의 차이가 있는 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자들이 대답할 능력이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었더니 땅 속에 있는 돌들이 소리를 질러 무식하게 용감한 사람들의 입을 막았다는 내용이다. 도대체 무슨 내용의 책일까? 비평학자들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오류가 많다, 이런 식으로 성경을 비평하며 득세를 하던 때가 있었다. 이들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반박하지 못하고 있을 때 고고학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주장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많은 자료가 발굴되고 해석되기 시작했다. 바로 비문, 비석, 토판에 쓰여진 글들이 성경의 역사성을 증명해 주었다. 즉 성서고고학에 관한 책이다. 20. 예수님이 우셨다는 기록이 두 번 있다. 한 번은 나사로의 죽음 앞이고 또 한 번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시면서 우셨다. 그게 환호하는 무리들을 뒤로한 채 메시야가 울어야할 정도로 그렇게 슬픈 일일까?
슬픈 일이다(1점) 21. AD70년에 로마 장군 디도(Titus)는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토성을 쌓아올려 마침내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만다. 오랫동안 포위되어 버티는 동안 온갖 참혹한 일이 다 일어났다. 물론 성전도 철저하게 파괴된다. 이런 일이 생겨난 것은 '평화에 관한 일이 숨기웠고 권고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다(42, 44).' 예수님의 이 말씀을 쉬운 말로 설명해 보자. 이 땅에 온 하나님의 아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배척함 22. 어떤 두꺼비는 알을 품고 독사의 약을 올린단다. 독사는 두꺼비를 잡아먹지 말아야한다는 것을 알지만 결국은 약이 올라 이 두꺼비를 잡아먹고 만단다. 그러면 독사의 몸에서 두꺼비가 부화되어 결국은 독사가 죽고 두꺼비들이 태어난단다. 이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진짜인지는 잘 모르겠다. 예수님께서 꼭 두꺼비 짓을 하고 계시는 것 같다. 무엇이? 죽기위해서 약을 올리는 것 같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자신을 노리고 있는 그 앞에서 날마다 백성들을 가리치시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