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 |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받아서 기록한 것만이 성경이 아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살았던 선지자의 삶의 현장에서 겪은 체험이나 경험도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메시지를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계시, 역사, 개인적인 체험 등이 포함되어 있다. 2. 참고로 바사의 왕은 고레스(BC 539-529), 캄비세스(BC 529-523), 수메르디스(3개월), 다리오(BC 522-485), 아하수에로(BC 485-464), 아닥사스다(BC 464-424)... 등이다. 이 중에 에스더와 관련된 왕은 아하수에로이다. 이 왕들이 성전 재건과 어떻게 연관되는가? 고레스 - 포로의 귀환과 성전재건을 명함, 다리오 - 중단된 성전재건 공사를 재개하도록 허락함, 아닥사스다는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총독으로 파견하여 종교개혁과 성벽공사를 하도록 도움: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 7년 즉 BC 458년에 귀국 했고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 21년 즉 BC 444 년에 귀국했다. 3. 유대의 달력은 바벨론의 월력을 차용하였다. 성경에는 니산월(1월), 티쉬리월(7월), 그리고 기슬르월(기슬래, 9월)이 보인다. 태양력과는 2 ~ 3달 늦다(가령, 기슬래월이 태양력으로는 12월). 바벨론으로 잡혀가기 전에는 달력이 없었을까? 종교력이라고 불리는 달력이 있었다. 유월절이 든 달이 1월이다. 민간력과 6개월 차이가 난다. 참고로 1월:니산, 2월:잇얄, 3월:시반, 4월:담무스, 5월:압, 6월:엘룰, 7월:티쉬리, 8월:헤쉬반, 9월:기슬래, 10월:데벧, 11월:세밭, 12월:아달, 아달세니(윤달). 4. 그냥 ‘왕궁에 있었더라’고 하면 되지 굳이 수산궁이라고 하는 이유는 뭘까? 궁이 여러 개 있었다는 말이다: 원래 수산은 바사의 수도였다. 후에 나라가 넓어지니까 바벨론(여름궁)과 악메다(메대 지역, 겨울궁)도 수도로 삼아 순회하면서 나라를 다스렸다. 봄, 가을에만 수산궁에서 통치했다. 그러니까 기슬르월(12월)에 수산궁에 있었다는 말은 왕과 함께 동행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5. 하나니는 7:2절에 보면 느헤미야의 친동생이다. 그가 유다에서 왔다? 형제간에 떨어져 있었다는 말인가? 짐작컨대 하나니는 에스라와 함께 귀환했을 것이다(물론 그 전에 귀환했을 수도 있지만). 그런데 유다에 어려운 일이 닥치자 왕궁에 있는 느헤미야에게 도움을 청하러 보냄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먼저 유대의 형편에 대해서 질문을 했다. 비록 외국의 왕궁에 있었지만 마음은 동족과 함께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동족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낀다(4). 이제 느헤미야는 민족을 위해서 왕에게 나아가야 했던 에스더와 같은 입장에 처한 셈이다. 6.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 사람? 지금은 포로에서 돌아간 자의 소식이 궁금해야 정상 아닌가? 느헤미야가 궁금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히 포로에서 놓여나 고국으로 돌아간 사람에 관한 소식이다. 바벨론에서 돌아간 사람들도 ‘사로잡힘을 면한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사로잡힘을 면한 사람’은 오래 전 바벨론의 침략시에 포로로 끌려가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바사의 왕궁에 안락하게 거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마음은 예루살렘에 가 있었다. 7. 3절은 오래 전의 얘기 아닌가?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의 함락은 이미 140여 년 전의 일이다. 하나니 일행이 전하는 소식은 최근의 소식이어야 옳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이 겪은 이런 저런 어려움을 가리키는 말이다. 성전공사도 방해를 받았는데 성벽이나 성문을 재건하는 일도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음에 틀림없다. 8. 느헤미야의 기도에서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약속)에 근거를 둔 기도: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그 분께서 자신에 대해서 하신 말씀을 인용하고(5, 신 7:9, 21), 자신들이 이렇게 수난을 당해야 하는 것도 그 분의 말씀을 어긴 탓이요(6c-7, 레 26: 14-45, 신 28:1-66), 간구하는 내용도 그 분의 약속하신 말씀을 되새기는 셈이다(8-9, 신 30:1-4).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기도가 가장 올바른 기도다. 기도할 때마다, 기도해야 할 일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억난다면 얼마나 복된가! 9.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 를 네 글자로 줄인다면? 모세오경: 신명기에 많이 등장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는 표현과 같다(신 5:31, 6:1, 7:11, 8:11...). 이 세 가지는 다소 어감이 다를 수는 있으나 동의어의 3중 반복인 셈이다. 한 가지라도 어기면 세 가지를 어긴 셈이다. 한 가지 잘못이 아버지의 믿음과 어머니의 사랑과 형제의 우정을 배반하는 것처럼? 10. 느헤미야가 모세의 글을 읽을 때 가장 은혜로운 구절이 있다면 무엇일까? 관주를 이용해서 찾아보자. 신 30:1-4: 9절은 바로 이 부분의 축약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이 약속을 기억하고 기도를 하는 것이다. 특별히 이 부분은 솔로몬이 인용해서 ‘만약 백성들이 범죄하여 타국으로 끌려가더라도 회개하면 돌아오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린 적이 있다(왕상 8:46-50). 11. 범죄하여 포로로 잡혀가도록 버려둔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다시 기억하셔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느헤미야가 그렇게 간구하는 근거가 무엇인가? 주의 백성이기 때문에: 출애굽을 통해서(=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으니 자신의 이 기도를 들으시고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출애굽의 역사를 다시 한번 더 일으켜달라는 셈이다. 12. 느헤미야의 기도의 결론(구체적인 간구)은 무엇인가? 왕에게 은혜를 입게 해달라는 것(11): 왕에게 나아가서 부탁드릴 각오를 하고 드린 기도다. 기도하고 움직이는 사람이다! 예루살렘의 처지를 듣고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하고 움직이기 전에 기도를 드린 것이다. 기도만 하고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도 많다! 13. 기도의 응답으로 술 관원이 되었는가? 이미 술 관원의 위치에 있었기에 이런 기도를 드리고 왕에게 청을 드리려는 것이다. 왕에게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에 이런 일에 자신이 적절하게 쓰임받기를 결심하였던 것이다. 14.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이란 임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글인데 그 임은 다름 아닌 자신을 귀양 보낸 왕을 가리킨다. 50세를 넘어서 귀양살이 중임에도 왕을 이렇게 연모하는 노래를 불렀다. 고대에 왕은 정말 특별한 존재였다. 신처럼 여기고 신의 행세를 한 왕도 한 둘이 아니다. 그런데, 부르지 않았는데 나아가면 죽임을 당해야 했던 그 두렵고 떨리는 바사의 왕을 가리켜 느헤미야는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이 사람(11): 왕을 가리켜 ‘이 사람’ 이라니? 불경스럽다고 모함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두렵게 여기는 사람은 사람을 신격화 하지 않는다. 아니,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신의 행세를 하려는 왕이라면 참으로 골치 아픈 인간들이다. 15. 술관원이라면 어느 정도의 직급일까? 계급 사회인 군대에서도 ‘계급보다는 보직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고대나 지금이나 왕에게 얼마나 신임을 받느냐 혹은 왕에게 얼마나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느냐는 것이 권력의 핵심이다. 왕의 마실 것을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는다. 가장 신임할 수 있는 자에게 맡긴다는 점에서 술관원은 대단히 서열이 높은 자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