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2


1. 느헤미야가 처음 소식을 들은 것은 기슬르(기슬래) 월이었다. 니산 월은 몇 달 뒤일까?

    4개월: 기슬르 월은 9월이고 니산 월은 1월(양력으로는 3-4월)이다. 이듬 해 아닌가? 유대인들은 7월(티쉬리 월)을 새해의 시작으로 보는 관습이 있으니... 어쨌거나 예루살렘의 소식을 들은지 반 년이나 지났다. 왕이 겨울을 다 지내고 봄이 되어서 돌아온 탓이다. 얼마나 가슴 졸이며 기다려야 했을까? 용감하게 나서지 않고 기도하며 때를 기다린 셈이다.

2. 느헤미야가 왕에게 술을 드렸다니 교인이 술 마셔도 괜찮은 거야?

    아닥사스다 왕은 성도가 아니잖아? 왕의 앞에 술이 있었다는 것은 왕이 잔치를 베풀었고 느헤미야가 왕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뜻일 뿐이다. 느헤미야가 왕에게 술 시중을 드는 것과 한국의 성도가 술 마시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한국교회의 술 문제는 선교 초기의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 따라 생겨난 특별한 관습이므로 이런 구절을 인용해서 술 문제를 다루려는 것은 핀트가 어긋난 것이다.

3. 느헤미야에게 병이 있는지 없는지 왕이 어떻게 알지?

    느헤미야의 표정에서 병이 아닌 근심거리가 있음을 충분하게 감지할 수 있었을 것: 의도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왕의 앞에 선 사람이, 그것도 잔치의 흥을 돋우어야 할 술 관원이 근심어린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은 큰 죄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느헤미야는 속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모양이다. 사람이 진심을 감추기는 쉽지 않다. 하나님과 왕에 대한 느헤미야의 진정성이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4. 열조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이 왜 그렇게 두려운 일인가?

    반역죄로 몰릴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선대의 왕이 허물어버린 성읍을, 더구나 중건하는 일을 중지시킨 적이 있는 일(스 4:7-23)을 재론하는 것은 그만큼 위험이 따르는 일이다. 더구나 예루살렘으로 보내달라고 하는 것은 왕에 대한 배신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문제다. 왕이 관직을 명하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거부하는 일이 가벼운 일이 아니다. 낙향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하물며 예루살렘 성읍을 중건하도록 보내달라?

5. 느헤미야는 왕을 두려워했지만 왕은 그에게 특별한 호의를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말은 무엇인가?

    언제 돌아올 것이냐고 묻는 것(6): 보내줄테니 그 일만 마치고는 빨리 돌아오라는 것이다. 비록 포로의 후손이지만 왕의 이런 신임을 받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불신자에게 칭찬과 호의를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엡 6:5-7, 벧전 2:18). 온통 욕을 얻어먹고 있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과 비교해보면 너무 부러운 일이다.

6. 느헤미야가 이런 청을 드리는 자리에 ‘왕후가 곁에 앉았더라’는 말은 도움이 됐더라는 말일까, 방해가 되었더라는 말일까?

    왕후도 호의적이었다는 뜻 아닐까? 문맥상으로는 도움이 되었다는 뜻 같아 보인다: 느헤미야는 왕에게도, 왕후에게도 호의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나 느헤미야도 후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이 환관(내시)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느헤미야는 왕후에게도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7. ‘언제 돌아오겠느냐?’는 왕의 질문에 즉석에서 기한을 정하고 필요한 사항을 다 말할 수 있었다는 것은 느헤미야의 어떤 점을 보여주는가?

    예루살렘의 소식을 들은 이후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 거의 4개월이나 기도하면서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증거다. 심지어 자신을 거할 집(=총독관저인 셈)에 대해서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8. 에스라는 귀환할 때 왕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스 7:6 ↔ 8:21-23). 그런데 느헤미야는 요구 사항이 많다(7-9). 누가 더 신앙적인가?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이 반드시 동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에스라의 귀환은 전적으로 종교적인 이유였지만 느헤미야는 어느 정도, 적어도 겉으로는, 정치적인 일로 여긴 셈이다. 에스라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로 작정했고 돌아오지 않아도 되지만 느헤미야는 성읍을 중건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일정한 기한 내에 마치고 돌아와야 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기대하고 왕의 도움을 바라지 않은 에스라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하게 바라면서도 왕의 힘을 이용한 느헤미야나 동일한 신앙인이다. 누가 더 신앙적이냐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이 달라도 서로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통행증(7)과 성읍 재건을 위한 재료(8)를 요청했는데 요청하지 않은 호위병(9)까지 붙여주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8).

9. 4절에서 시작된 문장은 어디서 끝이 나는가?

    10절: 너무 길다. 적절하게 문장을 끊어주는 것이 좋다. 여긴 왜 이렇게 길게 이어갔는지 모르겠다. 14-20절도 그렇다.

10. 산발랏과 도비야는 어떤 관계일까?

    주종관계: 호론 사람이란 벧호론 출신을 가리키는 말인 것 같다(경사가 심한 곳에 고도가 약 180m 차이 나는 두 개의 성읍이 있었다. 그래서 위 벧호론, 아래 벧호론으로 불렸다.). 베냐민과 에브라임의 경계인데(수 16:3-5, 18:13-14), 후에 에브라임에 속하였다(수 21:20-22). 그러니까 산발랏은 사마리아인이다. ‘종 되었던’(10)이란 말은 신하라는 뜻이다. 아마도 산발랏은 사마리아의 총독이고(참고 13:28) 도비야는 바로 밑의 관리였을 것이다. 눈의 가시 같은 유다지역에 힘 있는 총독이 부임하는 것은 근심거리다.

11. 느헤미야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고 비밀이 될까? 무너진 예루살렘을 돌아보는 것마저 비밀에 부쳐야 할까? 이미 산발랏과 도비야가 걱정을 하고 있는데?

    새로 총독이 부임한 것으로만 알았지 느헤미야의 구체적인 정황은 알려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갑자기 공표한 느헤미야의 의도는 유대인들에게는 깜짝 선물이었고, 대적들에게는 허를 찔린 아픔이었다. 그런 효과를 기대하고 며칠이지만 비밀스럽게 행동한 모양이다.

12.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에게 무슨 감화를 주셨는가(12)?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라는 것(18절 참고):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란 표현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몰래 성의 형편을 알아봐야겠다. 밤중에 몰래 한번 나가보자’ 이런 생각을 수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12절에 쉼표를 하나만 찍는다면 ‘행하게 하신 일을’ 다음에 찍어야 한다.

13. 느헤미야의 야간 순행은 회전이었을까, 왕복이었을까?

    왕복: 골짜기 문 → 용정 → 분문(여기까지는 힌놈의 골짜기 쪽) → 샘문 → 왕의 못 → 시내를 좇아 올라가서 성벽(여기까지는 기드론 골짜기 쪽) → 골짜기 문으로 돌아 왔으니 왕복을 한 셈이다. 고대 성읍의 남쪽 부분(다윗성)을 V자처럼 돌아보았을 것이다. 지금의 예루살렘 성벽과는 전혀 달라서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문들이다.

14.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할까?

    성벽이 무너져 내린 상태로 방치되고 있었다: 비탈진 계곡 위에 성읍을 세웠는데 무너져 성벽을 따라 가는 길을 막고 있는 상태다. 방치되어서 사람이 통행할 수 없는 버려진 곳이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계곡으로 내려가서 (기드론)시내를 따라 북쪽으로 더 올라갔다가 돌아왔다.

15. 성벽을 재건하자는 느헤미야의 말을 거부할 수 없는 이유가 뭘까?

    하나님께서 도우셨고(종교적 이유) 왕이 명한 일이기 때문(정치적 이유): 유대인들이 성벽을 재건하지 못하고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왕의 명령(스 4:7-23) 때문이었는데 재건하라고 명령이 났으니 쾌재를 부를 일이다.

16.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사람 게셈은 왕의 조서가 내렸는데도 이런 소리를 하면서 방해를 하고 있는가?

    느헤미야가 이것을 신앙의 문제로 다루기 때문이다: 느헤미야가 왕의 조서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 것은 그런 연유 탓일 것이다. 왕의 조서에 대해서 한 마디만 하면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는 말은 못할 텐데... 느헤미야는 신앙의 문제를 왕의 힘을 빌어서 해결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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