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3 |
고대인들은 언덕이나 산봉우리에 성벽을 쌓고 살았다. 성벽이 없는 곳이란 절대로 안전한 곳이 아니다. 평지에서 농사를 지어도 외적이 침입하면 성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성벽 없는 성전은 벌거벗은 채 호랑이 앞에 선 격이다(1:3). 외적에게 무방비로 버틴 셈이다. 2. 성벽 공사를 전문가에게 맡겨서 차례대로 세워나가는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느헤미야는 전혀 다른 방법을 썼다.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구간별로 할당해서 동시다발로 진행함: 빠른 시일 내에 속전속결로 끝내기에는 이 방법이 적격이다. 3. 대제사장을 위시한 제사장들, 다시 말하면 지도자들이 가장 먼저 기록된 것(1)은 이들이 솔선수범하였다는 뜻일 게다. 왜 양문일까? 제사 드릴 양과 관련이 있는 걸까? 제사용 양과 염소들은 이 문을 통해서 들어왔다. 더구나 이 문 곁에는 짐승들을 씻길 못(신약 시대에는 베데스다)도 있었다(요 5:2). 4. 제사장들이 건축한 양문, 함메아 망대, 하나넬 망대는 북쪽 성벽이다(1-5). 어문(아마도 근처에 어시장이 있었을 것, 북쪽에서 오는 물고기 상인들이 출입하기 좋은 위치이므로)은 하나넬 망대 가까이에 있었다. 제사장들이 왜 이 쪽을 담당했을까? 제사장들이 사역하던 성전과 가장 가까운 부분이다: 가장 길이가 짧은 부분이기도 하다. 그 다음 부분(여전히 북쪽 벽이다)은 건축한 므레못, 므술람, 사독도 제사장들이다. 5. 예루살렘 성벽을 왜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을까(2)? 그러고 보니 드고아 사람(5), 기브온 사람들(7)도 있네? 예루살렘 성벽이 예루살렘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온 이스라엘의 고향이며 삶의 중심지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여리고 사람들’이란 말이 이들이 현재 여리고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조상들이 여리고에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족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그런 방식으로 부르기도 했다(스 2:20-35). 6. ‘드고아 사람들’이란 족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니다. 에스라가 그런 방식으로 분류했던(스 2:20-35) 곳에 이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족보를 알 수 있는 사람들인데 굳이 이런 방식으로 표현한 이유가 있을까? 드고아의 귀족들이 참여치 아니한 것을 은근히 비난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 지도자들이 도망치는 판에 백성들이 의병을 일으킨 경우에 비긴다면 ‘이름 없는 백성’을 강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귀족들이 참여치 않은 것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7. 옛문(북쪽의 모퉁이 문, 왕하 14:13, 렘 31:38))에서 분문까지가 서쪽 성벽이다(6-13). 그 사이에는 어떤 특징적인 것이 있는가? 넓은 성벽, 풀무망대, 골짜기 문이 있다. 8. 7절은 가까운 지역의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서 일정한 부분을 담당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면 8절은? 직종별로, 아마도 동업자 조합에 일정한 부분을 맡겼던 모양이다. 넓은 성벽이란 히스기야가 확장시킨 부분의 성벽으로 추정하는 것인데(참고, 대하 32:5) 두께가 6.7m나 되는 성벽이 발굴되었다. 9.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 남녀노소(12b), 빈부귀천(8, 32), 지위고하(9, 12a, 15-17))를 막론하고 성벽건설에 힘을 쏟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표현이 부족해 보인다. ‘원근불문’ 이란 표현도 써야겠다. 어느 구절 때문인가? 자기 집과 가까운 곳이나 맞은 편을 중수했기 때문이다(10, 23): 나쁘게 본다면 온갖 구실을 다 동원해서 노역을 시킨 것처럼 보인다.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이 모든 능력을 다 동원해서, 힘을 모아 어려운 일을 감당했다는 뜻이다. 핫숩은 두 부분을 맡았다(11, 23). 10. 다른 곳은 길이를 언급하지 않는데 유독 하눈과 사노아 거민이 중수한 부분은 일천 규빗이라(13)고 밝히는 이유가 뭘까? 그들이 특별히 많은 수고를 하였음을 밝히는 것: 일천 규빗은 약 450m이다. 1-5절에 언급된 서쪽 성벽이 약 210m인 것과 비교해보면 이들이 얼마나 큰 수고를 했는지 알 수 있다. 11. 지금의 예루살렘 성과 인접한 곳에서 다윗이 여부스 족속에게서 조그마한 성을 하나 빼앗았다. 그 지역에서 가장 높은 지역은 아니지만 물을 구하기 좋은 곳이어서 오래 전부터 여부스 족속이 성을 쌓고 있었다. 이 성을 가리켜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후에 솔로몬이 북쪽의 더 높은 구릉에 성전을 세우고 시온성이라 불렀는데 두 성이 연결되어 예루살렘이라고 불리게 된다.) 다윗성(지금은 예루살렘 성 밖의 남쪽에 붙어있는 버려진 땅처럼 보인다): 솔로몬이 확장한 부분에서 추가로 서쪽과 북쪽으로 더 확장된 곳이 오늘의 예루살렘이다. 이 다윗성을 둘러싸고 있는 기드론 골짜기와 힌놈의 골짜기가 만나는 곳에 ‘왕의 동산’이 있었다. 그 동산으로 흘러가는 물이 고였던 곳이 셀라 못(후일에 실로암 못)이다. 이 못을 보호하기 위해서 성벽을 쌓았다(15). 12. 기혼의 샘물을 성벽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샘 부근에 못을 만들었다. 이것을 윗못(왕하 18:17, 사 7:3, 36:2), 혹은 실로암 못과 비교해서 ‘옛 못’이라 불렀는데(사 22:11), 이 못을 본문에서는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파서 만든 못(16): 이 못의 물을 지표의 물길로 아래쪽 셀라 못으로 끌어들였다. 이것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이다.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침입을 대비하여 노출된 수구 대신에 터널을 뚫었다(왕하 20:20, 대하 32:30). 이 터널은 높이 1.2-2m, 폭 0.6m, 직선거리 269m였는데, S자형이라서 전장은 533m에 달한다. 그 낙차는 2.18m로서 1m에 대해 4㎜의 비율이다. 남북 양 끝에서 파들어 갔는데, 접촉점을 찾는데 고심한 흔적을 보이는 듯 갱도가 좌우로 굴곡하고 있다. 남쪽이 30㎝ 정도 높은 듯 양자가 수평이 되도록 수정되었고, 천정에는 어긋난 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 13. ‘그 다음은 000가 중수하였고’라는 표현 방식이 대부분인데 ‘한 부분’이라는 말이 추가 된 경우가 더러 있다. 특히 19-21절을 16-18절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확실히 드러난다. 그러면 3장에서 ‘한 부분’이라는 표현이 몇 번이나 나오는가? 7번(11, 19, 20, 21, 24, 27, 30): 영어로 한다면 Another section이다. 이 말은 한 부분 외에 ‘또 다른 한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원문도 그렇다). 말하자면 두 몫을 감당했다는 말이다. 지정된 자기 몫 외에 자원해서 더 열심을 내었다는 뜻이다(20절의 ‘힘써’). 14. 1절에 등장하는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가까운 성벽을 세웠고, 20-21절의 바룩, 므레못도 제사장인데(10:6, 8) 이들은 대제사장의 사택이 있는 맞은 편 성벽을 건축했다(아마 두 몫을 감당했을 것). 이들과 대비되는 ‘평지에 사는 제사장들’(22)이란 어떤 제사장들일까? 예루살렘 주변(시외)에 거주하는 제사장들: 예루살렘 주변이 평지는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평지’라는 말은 성곽으로 둘러쳐지지 않은 곳을 가리키기도 한다(12:28). 제사장이 세 그룹, 즉 고위직, 시내 거주자(28-29절을 보면 이들도 두 몫을 감당했다), 시외 거주자로 구분된 셈이다. 15. 성 굽이, 성 모퉁이, 왕의 윗 궁, 내어민(돌출) 망대, 시위청(감옥?) 등의 세밀한 묘사는 알기 어려우니 접어두자. 동편에 있는 수문은 왜 수문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은데? 기혼 샘에 가까운 문이기 때문이다. 느디님 사람들(성전의 막일꾼)이 거하던 오벨(26)은 다윗성과 시온성이 연결되는 지역의 이름이다. 16. 모든 사람들이 다 열심을 내었지만 드고아 사람들은 특별히 열심을 냈다고 말할 수 있다. 왜 그런지 설명을 해보자. 지도자가 없음에도 두 몫을 감당했기 때문이다(5, 27). 17. 렘 31:40에서 ‘말문’이라고 번역된 ‘마문’은 틀림없이 말과 관련된 문일텐데 (솔로몬의) 왕궁에 이르는 길과 연결된 문이라고 추정한단다. 왜 그럴까? 당시에 말 타고 다니는 사람은 신분이 높은 사람일 수밖에 없고 그런 분들이 드나들던 문이라고 봐야 한다. 신분에 따라 출입구가 달랐다? 고대에는 충분히 그럴 수 있었겠다. 아니, 현대에도 있는 일이다. 18. 성벽에 북문, 서문은 없었는데(성의 모습이 남쪽으로 뾰족한 형태라서 남문은 당연히 없다) 동문지기가 있으니(29) 동문은 있네? 이 동문지기는 성전의 동문을 맡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일 가능성이 크다(참고, 대하 31:14). 또 성경의 모든 ‘동문’이라는 말은 성전의 동문을 가리킨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겔 10:19, 43:4). 19. 셀레먀의 아들 하나냐가 ‘한 부분’을 중수하였다는 것(30)은 두 몫을 담당했다는 의미이다. 하나냐에 대한 언급이 또 어디에 있었는가? 8절의 향품장사 하나냐가 동일인일 것이다. 20. 침방이 얼마나 크길래 침방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다고 하는 걸까? 일반 주택의 침실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라(12:44의 ‘곳간’, 13:7에는 ‘방’도 같은 단어다) 성전에 딸린 제사장의 방을 가리킬 수도 있다. 므술람이 제사장일 가능성이 높은데다(4, 6:18), 성벽 공사가 한 바퀴 돌아서 성전 가까이 왔다는 점을 참고로 하자. 21. 기록하는 방식에 따르면 성벽공사는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이 나는가? 양문에서(1) 시작해서 양문에서(32) 끝이 난다. 22. 예루살렘에 거주하지 않으면서 성벽 공사에 참여한 성읍이나 그룹은 대강 몇 개인가? 대략 12 정도: 여리고 사람들(2), 드고아 사람들(5), 기브온 사람과 메로놋 사람과 미스바 사람들(7), 예루살렘 지방(9, 12), 하눈과 사노아 거민(13), 벧학게렘 지방(14), 벧술 지방(16), 그일라 지방(17-18), 평지의 제사장들(22). 유명한 성읍이 많이 빠진 상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