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1


1. 예루살렘에 거하는 것이 마치 특별한 임무에 뽑힌 사람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1-2)?

    제비뽑기로 선발한 점과 자원한 사람들에게 복을 비는 것: 가기 싫은 파견 근무에 누군가가 자원하자 다른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성전이 완공되고 성벽이 완성되어도 거기에 거할 사람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거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성벽을 쌓았는데 이제는 성벽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을 불러들여야 한다? 상호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더라도 사람이 주체이어야 한다. 학교든, 교회든,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잘 지어진 건물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2. 제비를 뽑아서 1/10을 예루살렘에 거하게 했다는 것은 그 곳에 거해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하게 한 셈이다. 명색이 수도인데 왜 이래야 했을까?

    주권을 잃어버린지 오랜 후에 겨우 재건했지만 아직은 스스로를 방어할만큼 강하지 못해서(느 7:4) 각종 이방인들의 표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3. 거주 이전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것이라면 반발하지 않았을까?

    신앙적 결단(10장)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한 것, 더구나 제비뽑기를 하나님의 뜻으로(잠 16:33) 믿기 때문: 신앙적인 결단없이 행정적으로 일을 처리하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교회일이든 국가일이든 감격 없는 훈련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국가를 위해서 한 목숨 바치겠다는 각오가 있을 때는 어떤 어려운 훈련도 기꺼이 감당하지만 재수없게 뽑혔다거나 힘이 없어서 자기만 잡혀왔다고 생각하면 훈련이 제대로 되기 어렵다. 더구나 지도자(두목)들이 솔선수범하였으니(1) 더욱 수월했을 것이다. 원리를 먼저 가르치고 난 다음에 적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특히 로마서).

4. 예루살렘과 그 ‘도’는 어떤 관계인가(3)?

    예루살렘은 그 도의 도청인 셈: 유대가 페르시아의 한 행정구역이었음으로 ‘도’라고 불렸다(스 2:1). 에스더 당시에 바사에는 127도(에 1:1, 8:9)가 있었다. 예루살렘도 그 중의 하나였다.

5. 예루살렘에 거하는 유다 자손의 두목은 누구인가?

    아다야(4)와 마아세야(5): 이 두 사람이 베레스의 자손인 것처럼 보이나(6) 실제로 마아세야는 베레스의 동생인 셀라의 후손(=실로 사람)이다. 같은 유다 자손인데다 유다의 대표적인 족속이 베레스이니 이렇게 표기한 모양이다.

6. 예루살렘에 거하는 베냐민 자손의 두목은 누구인가?

    살루, 갑배, 살래: 베냐민 지파의 수가 유다 지파보다 많다. 사사 시대에 사라질뻔 했던 종족이 많이 번성했다. 더구나 감독 부감독을 차지했으니(9)!

7. 요엘이 예루살렘의 감독을 하고 유다가 부감독을 하면(9) 느헤미야는 무얼 하지?

    도지사: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성벽을 짓느라고 전심전력을 쏟았지만 실제로는 유대 전 지역을 관장하는 총독이었다.

8. 제사장의 가문에 대한 언급에서 절 구분이 영 이상하다. 11-14절을 내용을 기준으로 다시 구분해보자.

    11-12a(성전 담당 820명), 12b-13a(일반 제사장들 242명), 13b-14a(큰 용사 = 경비 담당 128명), 14b: 맡은 업무에 따라 제사장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진다. 그러면 삽디엘(14b)은 제사장 중에서 큰 용사의 감독이니 성전 경비대의 대장이다. 참고로, 장, 절 구분은 후대의 편집자가 임의로 한 것이므로 경우에 따라 잘못 구분된 것이 적지 않으므로 너무 의미를 두지 않아야 한다(특히 이사야서).

9.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일에 주로 봉사했다면 레위인들은 성전세나 십일조를 받거나(10:37-39) 성전을 보수, 유지하는 일을 맡았다. 이런 레위인들의 임무를 간단하게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성전 바깥 일: 광야에서 행군할 때는 주로 해체, 이동, 조립을 맡았지만 이제는 성전을 지었으니 보조적인 임무를 맡았다. 교회의 집사들인 셈이다.

10. 레위인들은 성전의 보조적인 일에 봉사했다. 가령, 성전을 유지 보수하는 일, 가르치는 일, 찬양하는 일, 문을 지키는 일 등이다. 그러면 17절의 ‘감사하는 말씀’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찬양: 그러니까 맛다냐는 찬양대 지휘자고 박부갸는 부지휘자다. 이들이 속한 가문 아삽 자손은 보통 ‘노래하는 자들’로 불린다(22, 7:44, 스 2:41, 참고: 대상 16:41의 여두둔). 이런 일들이 덜 명예로운 일이었을까? 레위인들의 숫자가(284 + 172 명) 다른 지파에 비해서(특히 제사장에 비해서) 현저히 적다(참고: 스 8:15). 교회도 음지에서 수고하는 성도들의 긍지를 살리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 레위인들이 성문까지 지켰을까? 19절의 ‘성 문지기’는 그냥 ‘문지기’라는 뜻이다. 차라리 성전 문지기(스 2:42의 달문과 악굽)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

11. 20절은 3절과 중복인데다 없어도 되는 말인데 왜 또 삽입하였을까?

    흩어져 고향 땅에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하필이면 예루살렘에 거하였더라고 말하는 셈이다: 일종의 칭찬이다.

12. 오벨이란 시온성과 다윗성의 연결부분을 가리킨다. 본래는 두 구릉 사이의 계곡지대지만 성벽으로 둘러싸여 요새화되었다. 한쪽에는 성전, 다른 쪽에는 왕궁이 있다. 느디님 사람들이 왜 이런 곳에 거하게 되었을까(3:26)?

    일터에 가까운 곳이라서? 느디님 사람들은 이방인 출신들로서 성전의 막일을 맡았다(스 8:20). 그래서 아마도 가까운 곳(약간은 낮은 곳)에 집단으로 거주했던 모양이다.

13. 아삽 자손의 얘기가 왜 또 나오나(22)?

    일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별도의 특별한 일 때문이다: 웃시가 왕의 명에 따라 노래하는 자들에게 봉급 주는 일을 맡았기 때문이다. 왕이 보기에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노래하는 것이었을까? 제사장을 챙기지 않고 말이야?

14. 브다히야는 예루살렘에 거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왜 여기에 언급이 되는가?

    (페르시아)왕의 지근거리(왕의 수하)에서 유다 백성들의 형편을 알리고 왕명을 받아 전하는 사람이었다(마치, 미국 대통령의 동북아 담당 보좌관과 같은 류의 지위였을 것). 그래서 노래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정하여 주는 왕명을 전할 수 있었다. 다른 일도 있었겠지만 특별히 여기서 언급된 이유는 노래하는 자들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15. 유다 자손들이 거하였던 향리 중에서 이름을 들어본 곳이 몇 군데인가?

    최소한 4개를 넘지 않으면 회개하고 성경을 더 열심히 읽어야 한다: 기럇 아바(=기럇 아르바 = 헤브론, 창 35:27, 수 15:13), 브엘세바(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거주지, 창 22:19), 시글락(다윗의 망명처, 삼상 27:6), 아둘람(다윗의 피난처, 삼상 22:1), 라기스(유명한 요새, 왕하 18:17), 아세가(수 10:10, 여호수아), 힌놈의 골짜기(우상 숭배의 장소, 렘 7:31) 등이다.

16.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은 ‘브엘세바에서 단까지’다. ‘브엘세바에서 힌놈의 골짜기까지’는 무엇을 가리키는 지명일까?

    유다 지파의 거주지: 힌놈의 골짜기는 예루살렘 서편에서 남북으로 뻗은 골짜기다.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예루살렘은 베냐민 지파에게 속한 성읍이었다(수 15:8, 18:28). 특히 이 지역은 여호수아 시대를 회상케 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위대한 시대!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하나님을 저버리면서 그 모든 영광을 다 잃어버렸다가 이제 겨우 조금 회복된 셈이다. 이런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윗 왕국의 회복을 염원하면서 이 부분을 읽지 않았을까?

17. 베냐민 자손이 거주하던 성읍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벧엘이다(예루살렘은 제외하고). 또 다른 익숙한 지명이 있는가?

    믹마스(삼상 13-14장): 요나단이 블레셋을 크게 물리친(일종의 독립전쟁) 싸움터이다. 앗수르 군대가 쳐들어와서 주둔할 것이라고 예언한 곳이기도 하다(사 10:28). 그 외에도 예레미야의 고향 아나돗(렘 1:1), 실로가 파괴된 이후 성막이 있던 놉(삼상 21:1), 사무엘의 고향 라마(삼상 7:15-17), 하나님의 애절한 노래에 등장하는 스보임(호 11:8), 산발랏이 느헤미야를 유인하여 죽이려고 하던 오노(느 6:2) 등이 있다. 유다 지파의 성읍만큼 익숙하지는 않아도 성경에 특징적인 사건과 관련이 있으므로 어느 정도는 안면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죄송하지만...

18. 성경에 이런 것(인구 재배치, 거주지)까지 자세하게 기록할 필요가 있을까?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지나간 선조들의 삶과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보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입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그 분의 역사하심도 함께 살펴야 한다. 신앙생활이 예배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가리키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의 입으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관하신 인간들의 삶과 역사를 통해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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