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안드레 |
등록일 | 2003-05-07 09:22:06 AM |
|
궁금씨께 (죽음, 지옥, 천국, 하나님에 대하여....) 궁금씨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것 같은데, 그나마 알고 있는것 같은 그 하나도 잘못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주장하는 쪽으로 끌여들여 그렇게 해석하는것이 아닙니다. 어떤 장님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어떤 부위를 만졌느냐에 따라 코끼리를 얘기하듯이요. 어느 한 부분의 성경구절만을 주장하고, 그 성경구절도 엉뚱하게 이해하면 그 결과도 엉뚱하기 마련입니다.
죽음, 천국, 지옥에 대하여 설명하기전에 이러한 단어가 성경에 어떻게 나와있는지.... 그리고 그 의미는 어떤지 사전이라도 찾아보고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성경에는 위의 단어들이 나와 있고, 또한 다른 표현으로도 많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궁금씨 덕분에 제가 가지고 있는 성경사전(기독교문사 발행)을 찾아보고 그 뜻을 간단히 정리해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좀 걸릴것 같고, 그보다 사전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는것이 더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살펴보시고요, 사실은 궁금씨보다 궁금씨의 말에 혼란을 가져올 분들이 있을까봐 그런 분들을 위해서 입니다.
한 가지 부탁드릴께요. 궁금씨 교회의 홈페이지 주소를 좀 가르켜 주셨으면 합니다. 궁금씨가 계속 원정경기만 하는것 같은데, 홈경기도 하셔야 되는것 아닙니까? 저도 그게 더 재미있을것 같구요. 그럼...
1. 죽음에 대하여
자연적으로 생명이 정지되는것. 그러므로 아브라함(창25:11), 아론의 사악한 아들들(레16:1), 모세(신34:5), 해산의 고통중에 있던 여인(삼상4:20), 어떤 아버지(마8:22),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막15:27), 심지어는 인자까지도 죽었다. 죽음은 육체로 부터 영혼이 떠나가는 것으로(딤후 4:6), 피할 수 없는 것으로(고후5:1), 이전의 자연상태로 되돌아 가는 것으로(전3:20), 잠과 같은 것으로(렘51:39) 묘사되어 있다. 또한 죽음은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상태이며(사38:11)찬양할 수도 없는 상태로 묘사되기도 한다(시6:5). 죽음은 죄의 결과이다(창2:17 롬5:21 6:23). 영적인 뜻에서의 죽음은 하나님과의 분리 혹은 영적인 어두움을 가르킨다(눅1:79 요3:36 롬5:12). 의로운 사람과 사악한 사람이 죽어서 영원한 세계로 가면, 의로운 자들은 영원한 낙원으로 가게 되며(사35:10 45:17 단7:14 12:2 계7:17), 사악한 자들은 끝없는 고통의 세계에 들어간다(렘20:11 단12:2 마25:46 마25:46 막3:29 살후1:9 유1:7). 성경은 사악한 자들에 대한 완전한 파멸을 말하지 않는다. 예수는 죽음을 정복하고 그 쏘는 것을 제거하였다(요5:24 고전15:53-57 요일5:12 계1:18) 두번째 사망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영원한 분리다(출20:6, 14)
2. 지옥에 대하여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이 가게 되는 천벌의 장소와 처지. 영원한 불(마18:8,9), 꺼지지 않는 불(마3:12 막9:44), 불못(계20:14), 불과 구더기(막9:48), 고난의 장소(계14:10), 바깥 어두움의 곳(마8:12 2:13 25:30) 등으로 묘사 되었다.
3. 무저갱에 대하여
신약성경에서 무저갱의 의미는 불순종의 영들이 가는 지옥(눅8:31 계9:1,2,11 11:7 17:8 20:1-3) 또는 죽은자의 주거인 음부(롬10:7)를 가르킨다.
4. 천국(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나라"라는 말에서 세 가지 다른 뜻, 즉 1) 군주가 다스리는 지역. 2) 군주지가 다스리는 백성. 3) 실제적인 통치 그 자체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 영어에서는 주로 세번째 의미를 생각하지만, 헬라어나 히브리어에서는 첫번째 의미를 생각하는 것 같다. 이 세 가지 의미는 신약성경에서 모두 발견된다.
1)하나님의 나라는 때로 그 나라의 백성을 의미한다. 요한계시록 5:10에서 구속받은 사람들은 나라인데,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이기 때문이 아니고, 그들이 하난미의 통치에 동참하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6에서도 이 용도로 사용되었다.
2)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영역이다. 이 영역은 때때로 현재가 되기도 하고 미래가 되기도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례요한의 사역 이후에 소개되었으며, 사람들이 그리로 침입한다고 하였다 (눅 16:16). 요한은 이 새로운 영역에 들어가지는 못했으나 그 문지방에는 섰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복은 너무 커서 거기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 크다 (마11:11).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나라의 적절한 상속자이기 때문에 그 나라를 주셨다 (마 8:12). 그러나 대다수의 백성들이 따르는 종교지도자들은 그들 자신도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마 23:13).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세리들과 창녀들이 그 나라에 들어갔다 (마 21:31; 골 1:13). 이 모든 구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의 복을 받는 현재의 영역을 의미하고 있다. 다른 한편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시작되는 미래의 영역이다. 의로운 자들은 이 나라를 상속할 것이며 (마 25:34), 하나님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다(마 13:43). 이 미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장차 올 시대의 영생에 들어가는 것과 동일하다 ( 19:16.23-30; 막 10:30).
3) 하나님의 나라는 또한 하나님의 통치 혹은 지배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영접하는 사람 혹은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만이 미래의 그 복된 통치를 받을 수 있다 (막 10:15).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우리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찾을 수 있다 (마 6:33).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단순히 추상적인 통치가 아니다. 그 나라는 역동적으로 활동하여 악을 멸망시키고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통치이다 (고전 15:24-26). 신약성경은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단계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이미 죽음을 멸망시키시고 생명과 불멸을 나타내셨다 (딤후 1:10). 그렇지만 죽음이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의 통치가 끝날 때까지 최종적으로 멸망된 것은 아니다 (계 20:14).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 즉 그의 구속적인 통치는 죽음과 사탄의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그리스도의 위격으로 역사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하나님의 나라는 이러한 적들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영광과 권세를 얻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이러한 현재의 승리 때문에 우리는 현세에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더 큰 복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적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요, 하나님이 다스리기 위해 일으키신 백성이며, 하나님께서 통치의 능력을 발휘하시는 영역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중생해야 한다 (요 3:3-5). 하나님의 나라는 종말론적으로 볼 때 현재와 미래의 두 단계가 있고, 예수께서 귀신을 내쫓은 권세는 하나님의 나라가 사람들 중에 이미 임한 증거가 된다 (마 12:28).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와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5. 하나님에 대하여
비록 성경에는 하나님이란 말에 대한 형식상의 정의가 내려져 있지는 않지만,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기독교 세계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정의는 성경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문화 속에서 이루어진 웨스트민스터소요리문답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은 영이신데 그 존재와 지혜와 능력과 거룩함과 의로움과 선함과 진리에 있어서 무한하고 영원하고 불변하시다." 이것은 성경이 하나님에 관해서 계속 적으로 선포하고 있는 바를 충실하게 잘 설명한 정의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이 말은 하나님이 자의식을 가진 비물직적 존재이며 스스고 결정하는 인격적인 존재임을 의미한다. "존재에 있어 무한한다." 이 교리는 하나님이 어느 곳에나 계신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무소부재는 시편 139편과 같이 성경에 명백히 나타나 있다. 그는 "지혜에 있어 무한하다." 이말은 하나님의 전지를 가리키며, 성경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관해 토로한다. "능력에 있어 무한하심" 은 전능하심, 즉 능력과 존재하는 모등 힘을 지배 할 수 있음을 가리킨다. "거룩과 의와 선함에 있어 무한하심"은 모든 논리와 합리성의 기초이심을 가리킨다. 수학과 논리의 원리들이나 이성의 모든 법칙들은 하나님을 떠나 있는 법칙들이 아니며,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품성을 이루는 속성들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거짓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고 말할지라도 (딛 1:2; 히 6:18), 이것이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능력이 많다고 해서 2*2=5를 만들 필요는 없다. 진리란 능력의 대상이 아니다. 성경에서 "영원하심"은 시간적인 시작과 끝이 없다는 말이며, 비유적인 의미로는 "영원"이란 "영생"이란 말과 같이 영원토록 있는 존재의 속성을 가리킨다. 성경에서 "불변함"이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자기 지속성이 영원에 걸쳐 완전함을 지적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행위로써 알려진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 계시한다 (히 1:1 이하). 또는 그의 보이지 않는 영원한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을 통해 분명하게 알려지고 보여진다 (롬 1:20).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 (시 19편 ; 롬 10:18). 하나님은 교제 속에서알려진다. 하나님은 믿음에 의해, 단순한 인식을 초월하여 그의 백성들과 교제함으로 알려진다는 것은 성경 전체를 통해 주제가 되는 약속 중 하나이다. 모세는 자기의 백성을 탈출시키면서, "내가 너와 함께 가고 너를 편하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보장을 받았다. 또한 모세는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않는다면 우리를 올라가게 마옵소거"라고 대답했다 (출 33:14 이하).성경에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추구하고 찾으라는 권면이 도처에 있다 (시 27편; 사 55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