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 / 하나님을 기만하는 기도 =장로교(?)=
우리가 사용하는 기독교 언어중에서 그 의미를 생각지 아니하고 잘못 사용되는 언어가 많이 있는것 같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기독교의 여러 교단을 뜻하는 언어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출석하는 교회는 장로교입니까? 아니면 감리교입니까?" 라는 질문에 "예, 장로교입니다" 라는 이런식의 언어들입니다.
제가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님께서 오늘 새벽기도회 말씀중에서도 그런 사실을 지적해 주셨는데, 대부분 사람들마다, 심지어 기독교 신문 잡지 책에 이르기 까지 교단을 뜻하는 ( )교 이렇게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따지고 보면 엄청나게 잘못 사용되어진 언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바로 표기하면 교단은 장로회, 감리회입니다. 예수를 믿는 교회는 '예수교' 또는 '기독교' 이지 장로교, 감리교가 아닙니다. 장로교, 감리교란 말은 예수교가 아닌 사람의 종교, 인본주의적, 교권주의적 성격이 나타나 있는 말입니다.
어느 교단의 교회를 말할때는 장로회 교회, 감리회 교회가 맞다고 생각됩니다.
요즘, 한국 기독교계가 혼란스럽고 시끌벅적한 일들이 많이 있는데 문제의 발단은 교회에 말씀의 진리가 희미하고 사람이 중심이 되며 사람에 의하여 교회가 이끌리어 가기 때문이라 생각되어 집니다.
이러한 때에 교회안에서 사용되는 잘못된 언어부터 시정하고 말씀중심, 말씀이 살아 역사하실수 있도록 모두가 낮아져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사람이 높아지고, 사람이 주인일 때 결코 하나님은 일 하실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만하는 기도=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내가 한 기도는 내가 책임(?)이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일의 시작은 기도이지 기도가 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기도한 만큼 주님의 뜻을 따라 달라지고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변화의 의지가 각자마다, 교회마다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뜻에 맡깁시다" 이 말은 정말 믿음이 있고 좋은 말이라 생각되지만, 바꾸어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이 말은 책임회피적이고, 무관심적이고, 도피적인 수단으로 이용 될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은 스스로의 책임을 통감하고 낮아져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순종이 없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기도의 모범을 보이신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 기도는 순종의 기도였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교회의 여러 문제 중의 하나가 행함과 순종이 없는 기도행위라고 생각됩니다.
차라리 이런 기도는 않하느니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마다 기도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별의 별 기도회로 모이지만, 그 기도회가 혹시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세수도 아니하며 헝크러진 머리에 슬픈표정으로 사람들에게 금식기도중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외식과 다를게 뭐 있습니까?
저는 지난 몇 해 전에 매주 금요일 마다 열리는 맘에 없는 심야 기도회에 본의 아니게 참석한 적이 많았었습니다. 제가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지난 번에 온 교인이 합심하여 드렸던 기도를 매번 싸그리 무효처리 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했으면 순종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함께 기도했으면 그 기도의 뜻을 따라 교회가 달라지도록 애쓰는 모습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의 잘못되고 거짓된것을 뉘우치고 하나님의 바라는 뜻에 따라 순종하고 변화하고져 하는 의지가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매번의 기도회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어떠한 인간적 교묘한 수단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기도를 하나님께서 역사하실까요?
아니지요. 그져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위지요.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 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3: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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